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이 시를 읊조리다 보니 문득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신문, TV, 인터넷, 잡지 등 대중매체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자살, 살인, 성폭행 등 뉴스들은 잠시 존재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을 야기시킵니다.
뉴스를 보기가 두렵고 잡지나 신문을 읽는것이 무서워집니다. 최근 한 공익공무원에 의해 저질러진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에서는 섬뜩함마저 듭니다. 자신의 친아버지로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에 걸쳐 상습 성폭행을 당해온 이야기를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구원했다는 ‘올해의 여성상’ 주인공인 은수연 씨에 대한 글을 읽을때는 질끈 눈이 나도 모르게 감겨집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일상에서 반복되어지는 일들은 그저 자연현상이라고 치부되니, 크게 자각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오직 우리의 삶이 한번뿐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죽을 때 빠져나가는 영혼의 무게는 21g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존재는 가벼운것처럼 여겨질 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그 무게 만으로 봤을 땐 삶의 무게가 보잘것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가벼울 수도, 또는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 무거움과 가벼움을 선택하는 문제가 가장 어려울 것입니다.
김춘수님의 ‘꽃’ 에서처럼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어합니다. 가벼운 존재가 되면 상처를 입을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겠지요. 세상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많습니다. 자존심이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으로,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잘나가면 교만함이, 잘 안 되면 열등감이 동반을 한다고 합니다.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존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자존감이란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기에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다른이의 존재도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요,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 그러니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만져지는 이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참 진리를 보게 될 것이란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개시허망(皆是虛妄), 즉 우리가 보는것은 허상일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입니다.
비록 허상일지라도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사건과 직면하여, 과연 그래야 하는가 하고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선택하는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푸르른 나무와 풀들 사이로 빨강, 노란 꽃들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한번만 있는 이 삶속에서 우리도 자존감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혹은 삶에 대해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경호 오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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