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숲속의 영화감독 신지승을 아시나요

영화감독 신지승은 숲속에 산다. 과거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 숲속에 통나무를 짓고 자급자족하며 살았듯이 신지승 감독도 양평에 집을 짓고 산다.

그는 10년전에 김기덕 감독과 더불어 서울 충무로에서 화려한 상업오락영화의 꿈을 안고 살아가던 젊은이였다. 그는 영화로 성공하지 못하자 실망감을 안고 쓸쓸히 낙향했다. 요즘처럼 거창하게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다. 그저 실패한 영화인의 귀향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80군데 시골을 돌면서 60여 편의 영화를 만들며 ‘마을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현재 유명인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모기업이 주는 환경대상도 받았다. 그가 영화를 통해 마을 공동체의식을 진작시켰고 결과적으로 환경운동에 기여했다는 취지일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서 나는 그를 초대했고 영화를 상영하고 세미나에서 토론도 했다. 그 책자에서 난 이렇게 썼다. “지금 이 시기 신지승은 가장 중요하다.” 신지승은 이미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그는 새로운 발견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미덕을 신지승은 제시한다. 그는 분명 문화예술의 대안을 개발한 사람이다. 그 대안의 요지는 적게 갖고 많이 나누는 생명사상이다.

적게 갖는다. 법정스님을 떠올림직하다. 신지승은 귀향을 했고 서울에서의 온갖 화려함을 버렸다. 그건 아마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내와 시골로 가서 아이를 키우고 자연속에서 더불어 산다. 자연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치유해주고 온전히 자리매김해주는 신비한 물질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랬고 스콧 니어링이 그랬고 법정이 그랬다. 신지승은 그 뒤를 이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많이 나눈다. 법정스님도 서울을 떠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일로 글을 썼노라 고백한 적이 있다. 신지승은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시작했다. 영화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소통의 도구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걸 예술이라 했던가. 진정한 예술은 자기가 만든 영화가 깐느영화제 같은 유수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는 명예가 아니라 관객 스스로 깨닫는 계기를 주는 영화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신지승이 만든 마을 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연출도, 출연도, 기술자들도 다 마을사람들 스스로 배워서 한다. 영화가 끝나면 밤에 천막을 치고 상영하며 자축한다. 신지승의 영화는 나눔의 철학이 깃들어있다.

깨달음이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그들은 갈등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협동심도 배우고 공동체의식을 자연스레 자각한다. 자연과 예술의 위대함속에서 그들은 인간의 길을 터득한다. 신지승은 감독이라는 예술가 개인의 자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는 자기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올바름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가 물질적으로 자신을 비움으로써 얼마나 정신적으로 풍성해졌고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게 바로 지금 시대의 학문이 할 일이다. 그게 바로 예술이 할 일이다. 그게 바로 공동체가 살고 사람이 생명의 주인인 이유이다. 그래서 신지승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 시대 그 누구보다도 가장 중요하다.

 

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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