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에서 삼 년 가까이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을 시골 고등학교 교사로 바꾸어 떠나던 날, 그동안 허물없이 지냈던 옆자리 동료가 허리를 잔뜩 구부리며 마지막 작별 인사로 장난스레 나에게 던진 말이다.
이후 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어온 지 삼십일 년째로 들어선 지금, 나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이 주제넘은 것 같고 자꾸만 부담스러워짐은 왜일까? 며칠 전 등굣길에 만난 제법 의젓하게 생긴 남학생 녀석이 “안녕하세욧, 선생님” 하며 인사를 하는데, 선생님이란 호칭에 강한 액센트를 붙여 나를 다그치듯 하는 인사가 맘에 걸렸다.
선생이란 호칭의 단어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소한 단어를 찾듯 맘을 설레며 우리말 사전을 펼쳐보았다. ‘선생 : 학식이나 덕행이 많은 사람에 대한 존칭’ 그 때 난 이런 의미를 거듭 되새길수록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결코 나는 그렇게 우리말 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할 수 없었기에….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위해 교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는 요즈음, 미래의 바람직한 교사상으로 인격의 힘을 지닌 교사, 전문적 능력을 갖춘 교사, 모든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교사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소크라테스의 윤리적 교사상, 공자의 구도적 교사상, 페스탈로치의 민중각성적 교사상, 이퇴계의 선비적 교사상, 그리고 섭리사적(攝理史的) 이상실현을 기한 김교신의 교사상을 미래의 바람직한 교사상(敎師像)의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우리가 모두 위대한 ‘선생님’이라 불러도 한 치의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김교신(金敎臣)의 교사상은 나에게 상당한 공감과 감명을 주었다.
그는 일제 식민지하의 제약 많았던 민족사학만 맴돌며 민족의 이상(理想)을 논하고 민족의 혼을 키우다 마흔 네 살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도 기다리던 해방의 그날을 넉 달 앞두고 조국의 흙으로 돌아간 무명교사였다.
그는 늘 수업시간에 교과서 내용을 일찍 마무리 하고 나머지는 인생, 민족, 인류의 이상을 논했다. 담당 교과는 지리였는데, 외국의 지리를 우리 지리의 눈으로 보게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그에게 배울 점은 단편적인 교과서의 내용보다 ‘삶’을 가르쳤던 그의 고집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일깨워 주어야 한다는 그의 고집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게 했다.
그는 마라톤의 손기정, 어린이 운동의 윤석중, 농촌 운동의 류달영 등을 키워냈는데, 제자 손기정과의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전 동경 예선전을 거쳐야 했는데, 김교신이 선두차로 손 선수를 직접 코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없었더라면 손 선수도 없었을 것인 즉, 선두 차에 탄 선생님의 눈물을 보고 열심히 뛰어 내가 우승을 할 수 있었다며 생존 시 손 선수는 당시를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세월의 빠르기가 마치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교직에 발을 내 디딘지 어느덧 삼십년이 지나갔다. 무엇 하나 잘 해 놓은 것 없이 지내온 나날이었다. 이제 평교사로서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에서 부디 소크라테스, 페스탈로치, 이퇴계와 같은 위대한 선생님은 되지 못하더라도, 세계 제일의 마라토너 손기정을 키운 김교신과 같은 눈물을 흘릴 수 없더라도,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학생들로부터 선생님이란 호칭을 나는 듣고 싶을 뿐이다.
김 희 찬 비봉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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