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不老河(부라오허) 강변의 진혼제

지난해 대학생 30명과 함께 우리 선열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 중국 중서부 지방을 탐방하는 기회가 있었다.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우리 청년들이 일본의 쓰카다 부대를 탈출하여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가는 구국장정 6천리 길의 험한 여정을 답사하는 코스였다. 7월의 땡볕 아래에서 드넓은 중원 땅을 맨몸으로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가며 오직 조국을 구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임시정부를 향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우리는 출발했으나, 처음의 분위기는 다소 관광을 겸한 듯하였다.

그러나 상해임시정부청사를 견학하고 윤봉길의사 거사 장소인 홍구공원을 견학 후, 구국의 길에 들어섰다가 산화하신 선열들을 위한 진혼제를 지내기 위해 강소성 서주시에서 不老河 강변을 찾았을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숙한 분위기로 모두들 경건한 자세가 되었다. 진혼제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사는 듯한 중국 현지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하고 동네 아이들은 남은 음식을 먹기 위해 우리를 빙 둘러쌌다.

진혼제가 끝난 후 단장의 제의로 남학생ㆍ여학생으로 팀을 나누어 즉석에서 태극기를 만들기로 하여, 단장님의 런닝셔츠 2장으로 각자 태극기를 만들었으며 모두들 신중하고 즐겁게 참여하였다.

나뭇가지를 구해서 태극기를 걸고 제단 앞에 세운 후, 그 당시 독립군들이 불렀던 애국가(나라를 빼앗기고 국가가 없어서 현재 애국가의 가사를 외국곡에 붙여 불렀던)를 모두들 목청껏 불렀다.

순간 알 수 없는 감격으로 가슴이 뭉클하였고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 지도교수의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 및 활약상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굵은 빗방울까지 떨어져 분위기는 더욱 엄숙하여 비장함까지 감돌았다.

선열들은 이 비를 피할 때가 없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조국 대한민국을 되찾기 위한 구국애족의 길을 걸으며 혼신을 다하였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은 저서 ‘돌베개’에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부라오허의 애국가는 이들의 장정과 독립의 감격을 보여 주는 곳이다.

“중국의 아침 햇살이 우리들 눈망울마다에서 빛났다. 한포기 풀잎의 이슬방울처럼 우리들의 순수가 눈망울마다에 맺혔던 것이다. 지고의 순수는 우리를 그토록 감동시켜 주었다. 아직도 나는 그 불로하 강변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가슴에 아로새겨진 조국애의 결의, 애국가의 힘이 그처럼 벅찬 것임은 아직도 감격스러운 회상의 과제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내가 한반도의 자손임은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새삼스러워진다. 그 강변에 선 이후부터.”(돌베개 77~78쪽)

지금 우리 세대 대부분은 4ㆍ13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의 나라 한 귀퉁이 임시정부 청사에 펄럭이던 태극기를 바라보며 전율을 느끼고 남의 나라 곡에 가사를 붙여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태극기가 휘날리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94주년이 되는 날이다.

잠시 짬을 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독립기념관이나 서대문 형무소등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현충시설을 찾아보는 것도 뜻깊은 일로 여겨진다. 또 중국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면 상해임시정부청사를 꼭 들러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지키고 국가와 민족을 구한 순국선열들의 얼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기원해 본다.

 

이 명 숙 국립이천호국원 현충과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