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우리에게 근대란

남쪽 지방도시에 사는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오는 데 비행기 표는 꼭 서울 본점을 통해 구입한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도시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남자에게 ‘꼬리친다’고 하는 생각에 여직원들이 ‘더럽게’ 불친절하다”고 했다.

“참, 근대화가 덜 되었군요”하고 껄껄 웃으며 맞장구치며 소주를 비웠다. 3시간이 넘게 먹고 마신 술자리가 대개 그렇듯이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희미하게 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유독 이 비행기 표 얘기는 또렷이 생각이 났다.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는지 모르겠다.

근대는 고대, 중세 다음의 시기로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와 직접 연결되는 시기이다. 사전을 보면 ‘공동체에 대한 ‘나’라는 개인의식의 성립이나 개인존중 등의 ‘개인우월 사상’을 내세워 따진다면 유럽에서는 보통 15∼16세기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의 시기 이후가 되고, 자본주의의 형성이나 시민사회의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17∼18세기 이후’라 한다.

사전적 정의는 복잡하지만 근대라는 시기의 특징은 개인의식의 성립과 신분 또는 혈통 등 중세적인 속박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과연 어느 정도쯤이나 ‘근대화’되었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사실 개인으로서의 자각은 혈연적 종속관계에서의 탈피와 함께 도덕적 의무의 충실한 이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엄격한 도덕률의 요구된다.

매년 추석과 설날이면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 ‘명절 스트레스를 날리는 방법’ 등의 기사는 신문과 방송의 단골 메뉴이다. 인간이 달나라에 진작 갔다 왔고, 컴퓨터ㆍ인터넷은 물론 페이스북ㆍ트위터 등 첨단의 이기가 난무하면서도 아직도 명절이라는 고색창연한 유물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인간관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대는 그 속도를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생활과 관념, 인간에 대한 배려 등은 지난 시절에서 몇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명절 스트레스 뿐이랴. 번호표가 나오는 기계 덕에 우체국과 은행 등에서는 새치기가 원초적으로 차단되었지만, 번호표 기계가 없는 곳은 그렇지 않다. 멀쩡히 차려 입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옆에 와서 얼렁뚱땅 끼어드는데 이를 지적하면 “내가 새치기나 할 사람으로 보이냐”고 오히려 큰소리다.

지하철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에 짜증내면 내릴 때마다 까칠한 인간이 되고 만다. 이런 인간들은 모두 개인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근대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부류라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1933년에 이효석, 이태준, 김기림 등과 함께 문학단체 구인회를 조직했던 소설가이자 영문학자인 조용만 선생의 “대동아전쟁 때 배급 줄을 세울 적에 양반과 상놈이 처음으로 한 줄로 선 게 근대의 시작이야”라는 말씀을 기억한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식량과 유류 사정 등이 좋지 않아져 배급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당시 조선 사람들이 양반ㆍ중인ㆍ상민이 따로 줄을 서자 일제가 일렬로 서게 한 것이 양반과 비양반이 섞이게 된 최초의 계기라는 말씀이다. 조용만 선생의 기억은 “사료적 가치가 있다”는 평을 듣는 분이니 이 분의 기억은 신뢰할 만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근대라는 시대의 시작은 100년은커녕 50~60여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진 도덕률 등이 반세기 남짓한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는 없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지만 맥락 없이 씁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김 상 엽 건국대 연구교수•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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