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만 해도 농사일이 없는 겨울이면 어른들은 마실 집을 정해 놓고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화투를 쳤다. 점당 10원인 민화투라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손에 쥐기가 어려운데도 딱히 할 게 없는 시골마을에선 겨울이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길고 긴 겨울밤에 변화가 온 건 인근 마을까지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낮엔 화투로 소일하던 부모님이 어느 날부턴가 동네 밖으로 마실을 가기 시작했다. 어머닌 지금도 70년대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여로’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얼굴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날 어머니를 졸라 텔레비전 구경을 갔는데 이상하게도 주인아주머니 얼굴엔 귀찮은 내색은커녕 자랑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방안엔 이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었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는 텔레비전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던 내 눈에 놀랄만한 광경이 들어왔다. 맨 앞자리, 말 그대로 명당자리에 보란 듯이 드러누워 있는 주인집 아들이었다. 그날, 저린 다리 탓에 코에 연방 침을 바르는 동안 내 소원은 다리 쭉 뻗고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게 됐다.
고등학교 다닐 땐 따뜻한 물을 맘대로 쓰는 거였다. 일찌감치 공부한답시고 도시로 전학해 전세살이를 했는데 주인집 연탄아궁이에 올려진 솥에서 물 한 바가지 얻을 때마다 눈치를 봤던 것 같다. 늦은 밤 주인집 아주머니의 학생 안 자냐는 물음은 전기요금 많이 나오니 그만 자라는 일종의 압력이었다.
설움 하면 집 없는 설움만 한 게 또 있을까. 그때 나처럼 셋방살이 하는 친구들은 대문 한번 시원스럽게 닫아보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학교 도서실서 공부하다 늦게 들어갔는데 주인이 문을 걸어놓은 채 잠들어 대문 두드리다 개에 물린 친구는 제발 문이라도 제때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땐 빠듯한 살림에 문간방을 세 놓는 가정이 많았다. 마당과 대문을 같이 쓰는 건 불편도 아니었다. 아예 거실이며 부엌을 함께 사용하는 일이 허다했다. 주인집 등쌀에 물도 맘껏 쓸 수 없는데다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부는 아이 울음소리만 나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애들이 많다는 이유로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때 얘기다.
집값은 참으로 이상하다. 가격이 올라도 걱정, 떨어져도 걱정이다. 특히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값 상승은 악몽이나 다름없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침체로 집값은 내려가고 전세금은 오르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주택경기가 불황 국면에 진입해 집값이 앞으로 1~2년간 더 떨어진단다.
전세금을 올려 달랄 땐 고통이었지만 그러는 사이 집값과 전세금의 차이가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조금만 보태도 집을 살 수 있게 된 거다. 여기에 더해 아파트 매수세가 실종되면서 집사는 사람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됐다. 집을 팔려는 사람은 많은데 사겠다는 사람은 적으니 집을 팔려면 온갖 사탕발림을 해야 한다.
임대주택 건설 확대 등 주택산업의 기초 여건을 개선하는 정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들이 넘쳐나면서 분양가를 30%나 할인해 주는 아파트들도 널려 있다. 무리한 대출로 집 장만해 고민하는 ‘하우스 푸어’가 넘쳐나는 세상에 이쯤 되면 집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집값이 더 떨어진다고 하니 셋방살이 설움만 생각하지 말고 집사는 사람이 갑인 세상을 길게 누린다고 생각하자. 내 경우만 봐도 전세 살면서 집 보러 다니는 재미만큼 쏠쏠한 게 없었다.
박 정 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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