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사형폐지국 유감

범죄자들의 법정태도 불손이 시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토막살인 등 금수보다 못한 악질적 범죄행위의 빈발로 민심이 흉흉한 터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반성의 기미는 커녕 범죄자들이 법정 질서마저 우습게 여길 지경에 이르렀으니 분노를 감추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오만방자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극악한 범죄에 대항하는 극형으로서의 사형이 법률상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지난 1997년 이후 이를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서 언필칭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법률이 부여한 형벌집행의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목숨만은 건질 수 있는 생명보장의 방패가 범죄 집단에게 훈장처럼 부여되고 만 것이다.

아울러 집행이 결여된 법정형으로서의 사형은 이미 그 의미와 무게가 퇴색하여 이제 웬만한 악질범죄에는 법관들 또한 집행도 되지 않는 사형선고를 심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선고하지 아니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극악무도 범죄자에 지나친 관용

사형제도와 그 집행의 존폐와 관련하여서는 오랜 기간 찬반의 논리가 명료하게 정리·대립되어 왔던 터라 재차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목숨 앞의 숙연함을 도외시하는 사형의 잔혹성을 수긍하더라도 그 보다 더욱 잔혹한 범죄의 응징을 위해서는 우리가 기꺼이 용인해 나가야 할 아픔임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사적 복수시대의 형벌관으로부터 범죄의 응징을 국가가 위임받은 오늘날의 공형벌 시대에 이르도록 형벌이 응보(應報)를 그 본질로 함에는 변함이 없다. 범죄에 대처하는 국가형벌의 강도가 응보적 등가성을 훼손할 경우 형벌의 위하력은 형해화되고 이는 곧 법질서의 이완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할 극악한 범죄마저 관대해져 버리면 그것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극심한 고통과 모욕을 안기고 나아가 공형벌 체계에 대한 불신감 및 사적 복수심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범죄 예비군들에게는 다음의 희생자를 찾게 하는 빌미와 여유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형집행과 관련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전 국민의 70%가 사형집행을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극악무도한 범죄로부터 공동체가, 국가가 자기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기대감이자 민심의 욕구임을 수긍해야 한다. 목숨 앞에 경건해야 할 의무는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공형벌 체계에 불신감 조장

물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목숨도 경건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명백하게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지난친 관용은 다른 선량한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범죄 앞에서 희미해지는 정의를 곧추 세우기 위해서라도 사형집행의 강한 의지가 이번 대선주자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대선공약의 일단으로 거론되어 졌으면 좋겠다.

 

이 태 희 前 법무부교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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