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돈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이 전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는 천부불가앙(天賦不可讓)의 자연권(自然權)도 돈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다반사이고 당연시 되었으며, 지구상의 어떤 이념을 갖는 국가든 사회든 간에 그렇게 돼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게 현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은 물론이려니와 어린아이들까지도 돈이 권력의 수원(水源)으로 인식되고 있고, 돈이면 다 통한다는 인식의 고정화돼 있다.
바로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 인성을 아무리 강조한다해서 교육적 가치가 통하겠는가. 어떠한 철학과 윤리학의 가치론이 최고와 최선(?)의 도구적 가치가 된 지금의 황금만능의 돈의 가치를 본래적 가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돈에 대한 본래적 가치의 부정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사회의 특성상 돈, 즉 부(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돈을 버는 방법과 쓰는 용처가 그릇되지만 않다면, 사실 그 누가 부의 축적의 과정과 그 결과를 지탄할 수 있겠는가.
이는 동서고금, 종족, 이유를 불문하고 다를 것이 없다. 하물며 동ㆍ서양, 시대를 넘어 읽히는 ‘탈무드’와 ‘논어’에서조차도 돈을 부정하거나 배타시 하지 않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 중에 번뇌, 말다툼, 텅 빈 지갑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 ‘텅 빈 지갑’이라고 탈무드는 말한다. 언뜻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하는 듯 하지만 어디 탈무드가 그렇겠는가. 한 번만 되짚어 보라.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있어 돈의 실체적 중요성을 꿰뚫어 보라는 진리이자 지혜인 것이다.
논어의 ‘학이(學而)’편 에서도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고, 머무름에는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잘못 해석하면 의식주의 풍요가 돈 없이 가능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돈을 구하는 것이 마치 죄를 범하는 행위로 논리 비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 가치 비중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구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드는 한결같이 경제와 교육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권을 위할 때마다 교육혁신을 부르짖는다. 시도 때도 없이 장소를 불문하고 수없는 교육정책이 만들어지고 고쳐진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컨대 현재 우리의 뇌리 속에 박혀있는 ‘돈이 전부다’라는 황금만능제일주의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교육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파쇼적 병폐가 사라지지 않고, 그릇되게 돈을 벌고 쓰는 방법과 용처가 용인되는 혼돈된 가치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한 어떤 교육 정책도 공염불이다.
교육은 분명 미래다. 우리 전 인류의 미래다. 당장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절박한 현실이다. 그 교육이 혁신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만인의 공통분모이다. 그 공통분모는 하나다. 돈이 만능이 아니라는 전사회적·범국민적 패러다임의 전환부터 교육이 이뤄져야 우리가 원하는 교육은 올바른 혁신이 될 수 있다.
이 권 재 오산시학교운영위원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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