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 있는데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대화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게 되어 있다. 각자가 생각이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처한 입장이 다르기에 자기 주장을 하다보면 차이를 느끼면서 갈등이 야기된다.
필자는 현재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활동을 하고 있다. 노사 간에 많은 현안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경직되어 있음을 노동현장에서 볼 수 있다. 분명 노동조합이 처한 입장과 회사가 처한 입장을 보면 서로 납득이 갈 정도로 상황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입장과 입장이 만나면 절대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본다. 노사 상호간에 노조는 회사를 이해하고 회사는 노조를 이해하는, 이해와 이해가 만나야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소통이 필수조건이다. 일단 아니면 아닌 대로 속이 상하면 속이 상한 대로 요구하고 싶은 내용들을 털어 놓는 것이다. 그것이 소통의 시작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회사에서도 초창기엔 노사관계가 아주 경직되어 있었다. 노노간 노사간 갈등으로 어려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엄청난 경영위기를 맞아 회사가 부도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이때 노사가 터놓고 대화를 통한 소통을 시작함으로써 신뢰를 쌓게 됐고 노동조합에서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대신 회사에서는 경영이 정상화되면 전원 리콜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오늘날의 아름다운 상생의 신노사문화를 구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산양은 원래 뒷 걸음질을 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두 마리의 산양이 냇가에 걸려있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산양의 특성상 부딪칠 수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면 두 마리 모두 다리 밑 냇물에 떨어지고 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런데 한 산양이 무릎을 꿇어 엎드려줌으로써 다른 한 마리의 산양이 그 무릎 꿇은 산양을 뛰어 넘어 건너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두 마리 다 안전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상대방에게 자기를 타고 넘을 수 있게 해준다면 논쟁하거나 다투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확실한 것은 양보한 만큼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다는 것이다. 또한 먼저 무릎을 꿇었다고 조소를 보내기 보다는 의연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로 성숙시켜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요즘 노동현장에 복수노조의 허용과 노조전임자에 대한 근로시간면제 제도인 타임오프제의 도입으로 회사는 회사대로 위기라 하고 노조는 노조대로 위기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분명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준말이라고 배웠다. 결국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역사를 써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기에 지금이야말로 생존을 위해 철저히 조합원 중심 건강한 노동운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 라고 사료된다.
한 때 강성노동운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또 그럴 만 했다. 노사 간에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되돌아 보면 결국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강한 것은 남을 부수지만 자기 자신이 먼저 깨지고 만다. 강한 것을 더 강한 것으로 막으려면 둘 다 상하고 만다. 그 부드러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플루투르크는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의 손에 망하고, 민중을 따르면 민중과 함께 망한다’고 했다. 대중을 무시하는 소통결핍과 대중에게 영합하는 포퓰리즘을 한꺼번에 꾸짖는 촌철살인이 아닌가 싶다.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귀를 열어야 마음이 열린다. 진정 조합원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국민들이 간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이 바로 소통을 위한 귀를 열 때다.
김용목 사회통합위원회 경기지역협의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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