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물론 여러 왕들은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은 단호했다. 강간은 교수형, 미수는 곤장 100대와 유배 1천리 처벌, 12세 이하 여아를 성폭행하면 예외없이 교수형에 처했다. 이런 강경정책의 영향으로 조선후기에는 오후 8시가 넘으면 성범죄 방지를 위해 남자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풍습까지 존재했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죄인은 원칙적으로 사형에 처할 정도였고, 경중(輕重)에 따라 사지를 자르는 능지처참, 목을 베는 참형, 목을 매는 교형을 집행하는 등 서릿발 단죄를 내렸다.
조선시대에 이 같은 강경범죄예방책만 있던 건 아니다. 정조대왕은 잘못된 판결로 죄없는 자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심리 진행 과정에 재조사를 명령하는 등 휼형(恤刑·형을 공정하게 시행)정신을 이행, 성군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강간, 살인, 강·절도 등 각종 범죄에 대해선 왕조(王朝)별로 백성들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강약을 조절하며 치안정책을 펴 나간 것이다. 명종실록과 헌종실록을 보면 ‘범죄 방지와 범인 체포는 호랑이를 잡는 것처럼 중요하고 황정(荒政·백성을 구하는 정책)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적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폭행 뒤 살을 도려낸 토막 살인과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묻지마 살인 등 엽기적인 사건이 만연된 현재 대한민국은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
우선 두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 후보들의 치안 관련 공약을 보면 기대 이하의 내용으로 실망감이 앞선다. 공약 어디서도 시민들이 안전하다고 인식할 만한 정책이 눈에 띄지 않고 너무 피상적인 부분들로 메워졌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시민 안정을 위해 내놓은 주요정책으론 경찰 인력 증원이다. 박 후보는 2만명, 문 후보는 3만명의 경찰을 늘려 급증하는 강력범죄, 사이버범죄, 신종범죄, 외국인 범죄 등 경찰 업무의 과중을 해결하고 범죄를 최소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늘리기식 공약은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전·현직 경찰과 가족들의 표심을 노린 선심성 공약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경찰 한명을 늘리려면 최소 수천만원에서 1억원 가까이 소요되는 것을 가정하면 공약이행시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재원마련은 어찌할 지 자못 궁금하다. 이와 함께 두 후보가 내놓은 검경수사권 해결 공약 또한 국민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치안정책은 아니라는 게 공통적인 시각이다.
그나마 박근혜 후보가 폭력범죄형량 대폭 상향, 폭력전과자 관리체계 강화 등 반사회적 폭력과 범죄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치안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이런 논란 속에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아직까지 관련공약을 내놓지도 않고 있다.
선진국의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시민안전에 대한 공약이 중요한 이슈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대선에 나온 민주당 오바마 등 후보들은 지역사회 경찰활동강화, 가정폭력방지대책, 아동포르노 근절, 강력범가석방금지 등 다소 추상적이지만 사안별로 구체성을 보이며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프랑스의 2012년 대선에도 청소년범죄, 테러범죄 등에 대한 법률 강화 약속 공약이 나오면서 이슈화되기도 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 역시 세계 제일의 안전한 나라를 목표로 내세워 내각 총리대신이 주재하는 범죄대책각료회의를 만들어 10년째 시민안전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이 선진국들의 치안관련 공약방향을 그대로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력사건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 소시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는 것이다. 표심을 위해 뜬구름만 잡는 시민안전 정책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눈은 냉정하기 때문이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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