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를 놓고 벌어지는 정부와 의사협회 사이의 다툼은 의사와 병의원의 영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포괄수가제란 병의 종류별로 치료비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지금까지는 행위별 수가제였는데, 쉽게 말해서 의사가 진료 행위를 추가할 때마다 진료비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정부가 행위별 수가제를 버리고 포괄수가제로 가려는 이유는 의사들이 필요없는 치료를 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과잉진료는 건강보험 지출의 증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적자를 줄여야 하는 건강보험 당국의 눈에는 당연히 물이 새는 바가지로 보였을 것이다. 그 구멍을 메우려는 노력이 포괄수가제인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가 의료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의사협회의 주장도 물론 맞다. 또 낮은 수가로 인한 환자들이 병원을 지나치게 자주 찾는 현상도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과잉진료 역시 건강보험 적자가 느는 데에 일정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사·병원 영리 동기 수용해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과잉 진료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과잉진료를 촉발한 그 영리 추구 동기가 이번에는 과소(過小)진료라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같은 증상을 치료하더라도 쓸 수 있는 기술이나 재료, 장비는 천차만별이다. 포괄수가제 하에서는 싼 것을 쓰던 비싼 것을 쓰던 보험공단이 지불하는 가격은 같다. 영리를 생각해야 하는 의사로서는 가급적 싼 재료나 장비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지난 5월 의사협회가 안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0% 이상의 의사들이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가급적 싼 재료를 쓰겠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과잉진료가 현실화되면 정부는 또다시 증상별로 필요한 진료 행위의 목록을 만들어 의사를 규제할 것이다.
사실 의료 수가 규제를 둘러싼 숨바꼭질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외과, 산부인과 같은 전공은 진료가 어렵고 위험은 높은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하여 수가는 매우 낮게 규제되어 왔다. 반면 피부 관리, 라식 수술, 성형수술은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가격이 자유화되어 있다. 당연히 새로운 의사들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로만 몰리고, 정작 생명과 직결되는 전공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은 기피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의료 수가 규제 재평가해야
이렇게 말을 하다 보면 의사들의 마음이 상할 것 같다. 하지만 조금도 그럴 이유가 없다. 겉으로 고상해 보이는 직업들도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리추구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이 학원 교사보다 의욕이 떨어지는 것도 영리 동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사명감만으로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경쟁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은 그 영리 추구 동기를 좋은 방향으로 발휘하게 하자는 것이다. 과잉진료, 과다진료, 의사 수급 불균형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의사와 병원의 영리 동기를 받아들이고, 의료 수가에 대한 규제를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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