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느 탈북 여성의 통일에 대한 염원

현재 우리나라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이 2만4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매년 입국자수가 1천명을 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그 수가 늘어나 2006년부터는 매년 2천명을 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도 2천700여명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입국자들 중 70%에 가까운 수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여성 탈북자 비율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점차 늘기 시작하여, 2006년 이후 부터는 여성의 비율이 무려 70%로, 숫자로 따지면 매년 1천500명 이상의 탈북여성들이 입국하고 있다. 이렇게 탈북자 중 여성이 훨씬 더 많은 이유는 북한의 생활고가 극심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식생활도 어려운 절대 빈곤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가족의 생존 전략에 여성들이 먼저 나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이와 같이 여성 주도의 탈북이 늘어나면서 먼저 입국한 여성들이 북한에 남은 가족을 불러들이는 동반탈북이 늘고 있다. 우리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은 올해 북한이탈주민의 인권문제와 관련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데, 필자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여성들이 처한 여러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알게 되었다.

지난주 만난 함경북도가 고향인 한 여성은 어린 자녀들을 조금이라도 잘 먹이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고 했다. 닷새의 일정으로 장사를 하러 중국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중국에서 3년간 갖은 일을 하다가 한국에 입국한 그녀는 현재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 주야간을 교대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하루 12시간을 일해야 하는 육체적 고단함이 아니다. 오히려 격주로 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그리고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는 북한에 두고 온 자식들과 부모님 생각에 외로움이 사무친다. 그래서 남들 다 쉬는 휴일에 차라리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명절에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이 고향의 부모님을 방문하고 가족들과 재회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 마다 그녀는 외국도 아니고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북한인데 우리는 왜 갈 수 없나 생각하며 눈물짓는다. 현재로선 북한의 자식들에게 목숨을 담보로 탈북을 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영 헤어져 살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서 그녀가 가장 바라는 것은 당연히 하루 빨리 남북한이 통일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는 사랑에 관한 노래는 수천, 수만 곡이 있으면서 왜 통일을 바라는 노래는 없느냐고 필자에게 반문했다.

올해로 벌써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2년이 됐다. 한국전쟁으로 이미 한번 이산가족이 된 시대에서 이제는 탈북으로 인해 새로운 이산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2만4천명의 탈북자들에게 4명의 가족이 있다고 하여도 얼추 10만명의 이산가족이 한국전쟁 이후 새로 생겨난 것이고, 또 탈북자들이 계속 입국하는 한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생겨날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이러한 북한이탈주민들을 대하면서 배려해야 할 것이 있다. 앞서 예로 든 탈북여성은 자식을 두고 온 아픔과 죄책감 때문에 탈북자라는 주변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우리가 북한이탈주민의 사정을 알고 싶어 무심코 던지는 질문에 그녀는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고통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은 우리의 이웃이다. 정치적 이념 논쟁 이전에 그들도 우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가족을 두고 온 그들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따뜻한 배려를 하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안태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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