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의 역사왜곡 조작 정부대책 수립을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시사용어 중의 하나가 있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라는 옛말처럼 중국의 이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야금거리는 역사도발은 자칫 세월과 더불어 당연한 주장으로 둔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초기에 확고한 대응으로 쐐기를 박아야 할 것이다.

유사 이래 전쟁이라는 것이 영토적 실효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거래의 연속행위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왜곡 역시 전쟁의 광의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거듭 제기한 ‘만리장성 도발’은 무력이 아닌 역사침략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비한 국가전략적 정부차원의 대응이 절대 필요한 위기 시점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중국을 알려면 우선 중국인을 알아야 한다. 중국민족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우화가 바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 라는 뜻으로,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라도 한 가지 일에 매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중국인에게는 목적이 있다면 대대손손 끝까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추진하면 언젠가는 거짓도 진실로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의 의미가 있다는 게 문제다.

최근 중국 국가 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이 옛 고구려와 발해 영역이던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까지 만리장성이 연결돼 있었다고 발표했다. 국가 문물국은 이번 조사에서 만리장성 유적지 4만3천721곳을 새로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미 중국은 2006년 국무원 이름으로 ‘장성 보호조례’를 제정하면서 만리장성에 대한 본격적인 보호와 연구 작업에 착수해왔고, 이후 중국 정부와 학계는 끊임없이 만리장성을 동·서로 확장하는데 연구의 초점을 맞춰서 결국 이런 역사침략의 결론을 저질렀다. 그 이전 중국 역사학계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 산해관이라고 했던 정설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이제 ‘5만리장성’으로 이름도 개칭해야 할 어리석음을 스스로 저질렀어도 이 일이 후대를 위한 지혜로운 판단이라고 실행하는 병리적 집단행위가 가능한 민족이 바로 중국인들이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에 따르면 ‘구련성’으로도 불려온 ‘박작성’은 랴오둥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방어하는 성이었다. 성에 관한 기록은 고구려와 당(唐)과의 전쟁에서 처음 등장하며 고구려 유적지임을 증명하고 있다. 고구려 보장왕 즉위 7년째인 648년에 당 태종은 설만철을 시켜 3만여 군사를 이끌고 박작성을 공격했다. 설만철이 압록강을 거슬러 박작성 남쪽 40여 리 지점에 진용을 갖추자, 당시 박작성 성주 소부손이 1만여명의 군대로 대항하여 성을 지켰으며, 고구려 장군 고문이 오골성과 안시성의 군대 3만여기를 거느리고 구원했다는 엄연한 역사기록이 살아있음에도 우공이산식으로 역사왜곡조작을 한 것이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중국이 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만리장성 유적들이 기존 만리장성의 개념과 전혀 다른 명나라나 고구려의 유적들이라면서 중국의 역사왜곡조작을 비판하고 있다. 이번 중국의 고무줄 식 만리장성의 억지주장은 고조선·고구려·발해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하고야 말겠다는 범죄적 역사침략행위로 규정해야 마땅하고, 유네스코에 제소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불법 무도한 이번 만리장성 역사왜곡은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백두산’도 ‘장백산’으로 대내외적으로 명칭왜곡을 저지르는 게 중국이다. 이러다가는 우리 역사가 통째로 중국역사에 흡수될 수도 있는 무서운 악몽을 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전쟁조차 안하고 고조선·고구려·발해의 만주영토를 송두리째 역사에서 침략하는 중국이나 독도를 침략하는 일본 역시 오랑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가 한중수교 20주년이라는데 축하선물치고는 참 아이러니하다.

장순휘 한국국방문화혁신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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