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뒤러, 그뤼네발트, 카라바조, 고야, 렘브란트, 피카소, 고흐…. 이 거장들은 ‘예쁜’ 작품을 그려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직시해서 그리려 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서경식,‘고뇌의 원근법’)
저는 이 대목을 곱씹으며 6·25전쟁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즉각 떠오르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미술 전공자 중에도 미술사에 관심이 없으면, 우리네 전쟁 그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6·25전쟁의 비극을 증언하는 그림이 있긴 합니다만,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처럼 명성이 없는 탓에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그런데 전쟁의 참상을 포착한 우리 그림이 적은 데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현실 비판적 작품 드문 우리 미술계
우리 화가들은 대부분 사회현실과 밀착된 그림을 그리는데 익숙지 않습니다. 은연중에 그림이란 비루한 현실이 거세된 풍경이나 정물, 인물 등을 그리는 구상화나 가시적인 형상이 없는 추상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6·25전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쟁으로 빚어진 실향과 이산, 파괴와 공포, 폭력과 증오의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1950년부터 3년 1개월 동안 지속된 참상을 체험했음에도 우리에겐 이렇다 할 전쟁 그림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6·25 참상 직시한 작품들 가치 빛나
6·25전쟁 때는 국가 이념에 맞는 그림이 양산된 시기였습니다. 갑작스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화가들은 ‘종군화가’라는 신분으로 전선의 긴박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거나 국군과 북한군 간의 격렬한 전투장면을 박진감 넘치게 그렸습니다. 예술적으로 승화되지 못한, 이 ‘종군 기록화’는 반공의식을 고취시키는 선전도구의 일종이었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은 전쟁의 비극과 치열하게 대결하지 않고 단순 기록자에 머물고 맙니다. 현실의식이 결여된 탓에 다분히 소재주의적인 시각에서 전쟁에 접근하거나 전쟁과 아랑곳없이 마음의 이상향을 추구하거나 조형적인 실험에 몰두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개선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국가 권력에 의해 미술이 통제되는 쪽으로 심화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 권력이 조직하고 운영한 일명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입니다. 전위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그림이 발붙일 수 없었던 국전은 얌전하고 온순한 그림 천국이었습니다. 국가 권력은 미술을 사회적인 현실과는 무관한, 화가의 내면적인 표현세계로 몰아갔습니다. 관람객도 통제된 분위기에서 생산된 예쁘고 ‘착한 그림’을 보고 미의식을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80년대에 나타난 민중미술을 제외하고는 광기의 시대와 정면 대결한 미술작품이 극미한 현실에서, “한국 미술은 왜 예쁘기만 한가?”라는 지적은 가슴을 쓰리게 만듭니다.
6·25전쟁 발발 62주년을 앞두고, 이수억의 ‘폐허의 서울’과 ‘구두닦이 소년’, 이철의 ‘학살’, 전화황의 ‘전쟁의 낙오자’, 박성환의 ‘한강대교’, 변영원의 ‘반공여혼’ 같은 전쟁의 비극을 직시한 그림들을 인터넷에 찾아봅니다. 예쁜 그림 일색인 우리 미술 현실에서 그나마 이들 그림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한국 미술은 결코 예쁘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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