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통업은 매우 뒤떨어졌다. 유통업 종사자의 1인당 부가가치를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한국은 1만7천불 수준인데(2007년 기준), 일본은 5만8천불, 프랑스는 6만7천불, 미국은 7만3천불이나 된다. 한국의 전자 산업이나 자동차, 건설 등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산업의 낙후는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한다. 농업이 낙후되면 소비자는 비싼 농수산물 가격을 부담해야 한다. 청년들은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국민이 낸 세금이 농민들에게 보조금으로 지출되어야 한다.
재래시장과 동네슈퍼, 중간도매상들로 대표되는 유통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농수산물 가격이 뛸 때마다 문제가 되는 높은 중간 유통마진, 그것이 바로 유통산업의 낙후가 가져오는 해악이다. 낙후되었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고, 그래서 제품 한 개당의 유통마진도 높아진다. 산지에선 값싸던 와인이 한국에만 들어보면 고가품이 되는 이유도 술의 유통구조가 낙후했기 때문이다.
유통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은 한국이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 중 하나이다. 그래서 ‘유통산업발전법’까지 만들긴 했지만, 그 핵심을 들여다보면 ‘낙후유통업보호법’임이 금방 드러난다. 낙후된 재래시장이나 동네슈퍼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로 가득하니 말이다. 현대식 할인마트를 만들려면 까다로운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고, 한 달에 몇 번은 강제로 휴무해야 한다. 19대 국회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저녁 9시에 문을 닫게 한다고 한다. 이 법이 내걸고 있는 유통 부문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이란 실질적으로는 낙후 유통업의 생명 연장을 뜻하게 되었다.
낙후된 유통업만 보호하는 관련법
재래시장과 동네슈퍼의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서민 소비자와 청년 근로자들도 생각하길 바란다. 지금과 같은 유통산업에 청년들이 청춘을 걸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의 유통업은 농업과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호와 보조금이 없으면 지탱하기 어려운 산업이 되어 가고 있다.
농업이 지금처럼 낙후된 산업이 된 데에는 소위 도시자본의 침투를 막는 정책이 크게 작용했다. 농업의 기업화는 아직도 금기이다. 그런 곳에 대학 나온 젊은이들이 들어올 리가 없다. 결국, 농업은 어르신들만 하는 산업이 되어버렸다. ‘할 것 없는데 농사나 지어볼까?’ 하는 식의 산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 유통이 그런 전철을 밟기 시작했다. 유통의 ‘프로’들은 참여 못하고 아마추어들끼리만 경쟁하는 산업이 되어 가고 있다. 할 것 없으면 하는 산업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통업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유통의 ‘프로’들 경쟁하는 산업 돼야
무엇보다 유통혁명에 성공한 기업이 계속 점포를 늘려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을 구하고, 근로자들은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영세상인들과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상생을 도모하면 된다. 영세 상인들이 소자본을 투자해서 성공 기업의 브랜드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이다. 그것이 진정한 상생이고 동반성장이다. 2년 전까지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오던 프랜차이즈 보급 정책은 좋은 시도였다. 느닷없이 프랜차이즈마저 대기업의 횡포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쇼핑 천국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정치권에 묻는다. 발전은 고사하고 아직 제대로 커보지도 못한 유통업을 벌써부터 애 늙은이로 만들려고 하는가.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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