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빠른 교육, 느린 교육

시대 변화에 따라 교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선생님들은 과거보다 비교적 적은 30여명으로 구성된 학급에서, 간편하고 편리한 복장을 하고, 휴대용 마이크를 사용하면서 생동감 있게 열심히 수업을 한다.

겉모습은 생동감있는 교실 같지만 가르치는 교사들의 기운은 예전 같지 않다. 학생인권조례로 학생들의 늘어난 인권지수만큼 타인에 대한 책임지수는 오히려 반비례된 상황이고, 교사의 능력은 오직 눈에 보이는 성적 비교에서 우열이 결정되다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실을 교사란 직업의 만족도와 선생님들이 자신의 자녀가 교사가 되길 원하는 비율이 해마다 수직 하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학교 교육의 현장 한 가운데에 있는 학교장 입장에서는 고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적을 올려야 하며, 동시에 수준 높은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싶은 욕심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요즘 선생님들의 특별실을 이용하지 않고 교실에서만 수업을 주로 하려고 한다. 많은 비용을 투자하여 시설도 좋고 기자재가 잘 갖추어진 특별실에서 실험과 실습을 하면서 체험중심의 다양한 파지효과가 높은 수업을 하면 좋으련만, 시설이 빈약한 교실에서 주로 수업을 하려고 한다. 교실에서 사용하는 교구재는 교과서와 칠판에 의존하며 기껏해야 교사용으로 배부된 학습CD 정도이다.

그동안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서도 불구하고 교육에 많은 재정을 투자하여 만들어 놓은 특별실과 기자재들이 이처럼 교사들로부터 외면당하여 먼지가 끼어있고 실험실습비가 남아돌기도 한다. 선생님들은 ‘성적을 올려야하는데 번거롭게 특별실을 이용하는 교육활동을 할 여유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현행 학교평가의 중심에 있는 성적서열 척도 아래에서는 성적을 곧바로 드러내야 하는 ‘빠른 교육’ 방법이 최선인 것이다. 햄버거나 라면과 같은 즉석 식품을 지나치게 즐기다보면 영양소가 부족하고 불균형 상황이라서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특별실을 활용하지 않고 즉시 드러나는 성적만을 중시하는 교육은 일시적으로 고득점에 좋은 방편일수 있겠지만 분명 문제가 있다. 실험이나 체험을 하지 않는 교육활동으로는 각종 정보나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응용하여 창의적으로 발산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체험, 실험실습, 토론, 발표, 시연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기존의 지식이나 정보를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답습하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다. 학습활동 속도가 좀 느리고 절차가 복잡하다고 하여 과정이 축소되거나 생략되는 교육은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후 세계 최빈국 가운에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오늘날처럼 발전된 나라로 성장하는 데는 ‘과학기술입국’이란 슬로건 속에서 실험실을 구축하고 기자재를 확보하여 기초과학교육을 충실하게 한 과정 속에 숨겨진 교육효과를 기다린 덕분이다. 이처럼 과정을 중시하는 ‘느린 교육’이 결과적으로 큰 기여를 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식정보화에 시대에 변화의 속도가 현기증 날 정도이다. 그렇다고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교육 방법까지도 인스턴트로 이루어져야 되겠는가 묻고 싶다.

김 정 렬 인천 연성중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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