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달팽이가 보는 별

영화상영 시간이 거의 다돼서 여러 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학생들이 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들 몸이 조금씩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극장 나들이가 싫지 않았는지 겉모습에 설레는 엣지가 엿보였다.

지난 22일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나눔센터가 준비한 극장 나들이의 주인공은 성라자로마을에 한센인들과 다니엘의 집, 광명장애인보호작업장의 지적장애인들, 서광학교에서 온 청각장애인들, 시각장애인협회의 시각장애인들 등이었다.

영화가 시작됐다. ‘달팽이의 별’.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부가 연을 날리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남편은 시청각장애인이었고 아내는 척추장애인이었다. 눈이 슬슬 흩날리는 어느 시골길에서 부부는 함께 연을 날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소박하고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청각장애인들도 시각장애인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베리어프리’ 영화였다.

눈을 감았다. 마치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기분이었다. 내레이션의 설명에 따라서 주인공의 움직임을 상상했다. 보는 것보다 더 감칠맛이 났다. 오히려 주인공의 감정이 더 실감나게 느껴졌다. 우리에게는 직접 보지 않아도 감상할 수 있는 다른 시선들이 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영화 속에 남자 주인공은 글을 쓰길 좋아했다. 점자로 동화책을 자주 읽는 것을 보니 시인이나 동화작가가 되고 싶은가 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종종 주인공의 글이 들린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사람의 시력이나 청력이란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거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우주인이라고 소개한다. 보지 못하는 것, 듣지 못하는 것이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들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주 어딘가로 떠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배우자다. 그도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우주인인 남편을 보면서 항상 기쁘고 행복해했다. 손 등 위에 점자를 찍으며 서로 대화를 나누고 산책을 하며 같이 운동을 한다.

한 번은 친구들이 집에 방문해서 결혼한 그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직 결혼하지 못한 친구에게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돼서 결혼을 못하는 거야.” 친구는 웃기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해서 “그러면 그 준비가 뭔데?”라며 대꾸했다. “그건 외로움이야. 넌 아직 덜 외로워서 결혼 준비가 안 된 거야.” 친구들은 다들 그 말에 재밌다고 자지러졌다. 참 넌센스다. 그렇지만 생각해 볼만 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하게 외로워 해 본 사람이 외로움을 알 수 있듯이 그때부터 사랑의 꽃은 피는 것이 아닐까. 영화에 등장하는 부부가 저렇게 행복하고 항상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는 건 깊게 외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에 빛이 들어 왔다. 꼬박 2시간이 흘렀다. 영화 상영시간 내내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하던 한 시각장애인에게 “오늘 어땠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두 부부가 사는 따뜻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어두운 우주 어디론가로 떠돌다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아마도 달팽이가 보는 별이 그랬던 게 아닐까. 영화 상영이 끝나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한 시각장애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계속해서 뇌리에 맴돈다.

“뭐, 할 거 다하네!”

김 용 민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나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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