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보정당 비례대표 추첨제 도입 검토해야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토대가 붕괴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4·11 총선에서 13석의 국회 의석수를 확보했지만, 울산·창원 등 노동자 벨트를 잃었다. 17대 총선에서 얻은 10석보다 3석을 더 확보한 총선 결과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진보정당의 대약진으로 평가했지만, 일부에서는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자생성에 대한 중대한 위기로 보는 견해도 제기됐다. 진보정당의 기본적 지지는 노동자 계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구를 통해 확보한 7석 가운데 야권연대 없이 당선될 수 있었던 후보는 노회찬 당선자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으로 이제 진보적 지식인들과 지지 국민들마저 통합진보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국민들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총선에서 얻은 지지율 10.3%는 최근 조사를 보면 반 토막 났다.

비례대표는 지역구 국회의원만으로는 부족한 직능·지역·세대의 대표성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지만 핵심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순위에 있다. 그러나 우리제도는 국민이 이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내에 맡겨져 있고, 기성정당의 경우 당내 권력자와 계파간 담합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진성당원에 의한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를 선발하는 통합진보당은 이러한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이번에 5살짜리 당원이나 당비대납을 통한 유령당원이 나타나면서 진성당원의 부피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고, 이것은 중복 IP나 뭉텅이 투표라는 부정투표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그 뒤의 수습과정은 더욱 참혹하다. 폭력에 의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진 정당에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비례대표는 노동자 벨트가 무너진 상태에서 진보정당이 국민 대표성을 확보해 미래로 나아가게 해주는 유일한 지지대로 볼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비례대표 당선자와 순위 경선 참여자의 전원사퇴가 그나마 수습책으로 제시되지만, 이 정도에서 진보정당의 내일이 열리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앞으로 비례대표 순위 경쟁의 투명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각종 선거에서 국민들이 음습한 정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외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당이 변하려면 그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통합진보당의 갈등의 축은 비례대표를 둘러싼 정파간 대립이고, 부정 경선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보면 진성당원제를 기반으로해서 선발되는 비례대표가 과연 정파성을 떠나서 온전한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로 재정의 될 수 있다.

당원에 대한 전수조사 등도 주장되고 있지만, 비례대표 선발시 정치학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추첨제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추첨제의 장점은 부정선거가 없고,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이 가능한데다가, 민주주의의 원리인 자기통치의 적극적인 측면이 나타난다는 점 등이다. 진성당원에 의한 정당 운영을 강조하는 통합진보당에서 수용할 만하고 과학적 통계방식을 동원한다면, ‘노동 없는 진보’라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보완도 추첨으로 가능해진다. 물론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제안까지 하는 이유는 사회와 역사를 위해 진보의 가치와 이것을 주창하는 세력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환 ㈔휴편나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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