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계부채에 대한 경계 높여야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금융환경은 혁명적이라 할 만큼 큰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업들은 재무건전성과 안전경영을 추구하며 외부차입이 매우 줄어든 반면 가계는 부채가 대폭 늘어났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축소되면서 그동안 기업에 편중되었던 금융기관의 대출이 가계로 대체되는 초기 과정에서는 민간소비 진작으로 기업생산이 늘어나는 등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긍정적 효과가 작지 않았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할까. 이제는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부채가 상환부담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소비위축을 가져와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913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7년간 가계부채의 연평균 증가율은 9.1%에 달해 경제성장률(연평균 3.8%)을 두 배 이상 웃돌고 있다. 가계부채 규모가 우려할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질 측면을 보더라도 최근 발표된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작년 1년 중에 전체가계의 부채보유 가구 수가 3.0% 증가한 가운데 소득 최하위 20%에 해당하는 계층이 가장 많이 증가한 3.7%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계층은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이 전체가계 증가 폭(2.2%p)의 4배에 달하는 8.4%p를 기록하였다. 저소득층은 생계형 목적의 차입비중도 높게 나타나 소득의 많은 부분이 빚 갚는 데 쓰이고, 생계를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하는 어려움이 되풀이되고 있다.

인천지역은 그동안 경제자유구역 및 도심재개발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택관련 대출이 많이 늘어난 데다 지역 내 부동산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타 지역에 비해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우려할 수준이라 하겠다. 실제로 지난해 말 인천의 가계대출 잔액은 41조 원에 달해 광역시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인천소재 은행의 작년 가계대출 증가율은 10.3%로서 서울 및 여타 광역시(평균 5.1%)에 비해 2배가 넘는 증가세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 최근 금융당국은 가계부채의 과도한 증가를 억제하려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될 수 있는 대로 신규 가계대출을 자제토록 지도하고 원금 균등분할 상환방식으로의 전환 등을 통해 가계부채 문제가 연착륙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금융기관의 위험관리가 더욱 엄격해지고 대출태도도 더 신중한 자세로 전환되었다. 더욱이 지난 4월16일부터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주요 시중은행에 대한 공동검사를 통해 저소득 계층에 대한 대출상황, 은행의 금리운영 및 위험 관리의 적정성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볼 때 앞으로 가계의 자금차입 여건이 호전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가계 입장에서는 어려운 시기에 대출취급에 소극적인 금융기관들과 이를 독려하는 감독당국에 대한 서운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수위에 가까워진 가계부채의 각종 부작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그동안 우리 가계가 재무구조 건전성이나 소득·지출 구조의 합리성 등에 대해 과연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 냉정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한 저금리 구조하에서 자산가격 상승 등을 기대한 ‘빚테크’와 과소비에 치중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정부에서도 경제성장 등을 통해 가계소득이 향상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노력하여야 하겠지만, 당분간 부동산 경기가 가계부채로 인해 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고 유로존 재정위기 영향으로 경기회복도 더디게 진행되어 빠른 소득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 부채부담 가계는 합리적인 지출계획을 세워 소비를 과감하게 줄여나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한번 올라간 소비수준이 쉽게 후퇴하지 않는 현상을 톱니모양에 빗대어 ‘톱니 효과(ratchet effect)’라고 하는 경제학 용어가 있듯이 빚 갚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돈 씀씀이를 갑자기 줄여야 하는 과정이 뼈를 깎는 고통에도 비유됨을 보면 ‘남의 돈 쓰기’에 정말 신중해야 하겠다.

서영식 한국은행 인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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