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 재학 중간에 군대를 다녀온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니 입학해 다니던 공과대학이 공업교육대학으로 전환돼 있었다. 기능 인력을 키우기 위해 공업학교를 많이 설립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업교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해 정부에서 공과대학을 공업교육대학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래서 교사가 되기로 맘 먹었고 인천에 교사로 발령 받은 지 벌써 30여년이 지났다.
교사가 된 과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내가 처음부터 교사가 되겠다고 사범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또 하나의 선택지가 주어져서 선택한 것이 교사라는 직업이었다.
졸업 후 화공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니까 공고로 발령을 받아야하는데, 공고에는 자리가 없어 중학교 기술교과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솔직하게 말해 학창시절 기술은 교과목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런 과목을 가르치게 되니까 마음이 착잡했다. 가르치는 교과가 맘에 들지 않으니 학생 지도에도 흥미를 못 느껴 사직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그만두려고 했다.
부모님은 국가공무원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존속되는 안정된 직업이라고 계속 다니기를 권하셨지만 앞길이 구만리가 남은 젊은이의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공대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직해 해외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는데 중학교에 발령받아 기타 과목으로 일컬어지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에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러던 중 의사인 사촌 형님의 말씀 한 마디가 나를 오늘날까지 교직에 몸담게 했다. 형님은 “의사는 매일 인상 쓰고 아프다고 하는 사람들과 생활하고, 법관은 대부분이 죄지은 도둑이나 강도, 사기꾼 등과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교사는 아이들이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교직에 남아 있기를 권했다. 교사라는 직업이 보람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기왕 교사가 되려면 부족한 교사가 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나름대로 나 자신이 교사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또 기술 교과가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존재 이유를 찾자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고 삶 자체가 행복해졌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아이들의 자율학습을 지도해도, 말썽꾸러기 학생을 만나도 짜증스럽지 않았다.
학교 교육의 침체 이유로 교사들의 사명감과 열정의 부족을 말하곤 한다. 일부 교사들이 승진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교육에 의욕은 보이지 않고 근무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하며, 담임도 부장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교사로서 자격 미달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4천만의 스승이라는 자부심을 찾아야 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꺼린다거나 귀찮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이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성스런 일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문화체육부 차관이었던 박선규씨는 “선생님들은 우아한 백조인데 스스로를 미운 오리새끼로 아는 것 같다”고 했다. 교사는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 하늘이 내려주신 천직인데 자긍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6·25 이후 전 세계에서 최고로 가난한 나라, 아무 자원도 없는 나라를 오늘날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만든 공헌자가 교사다. 오직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는 스승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다. 다만 몇몇 기대에 못 미치는 선생님들 때문에 잡음이 일어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질책도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께 당부드리고 싶다. “선생님! 주변 여건이 우리를 아무리 힘들게 해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십시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리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4천만의 스승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자긍심을 갖고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웁시다.”
이 상 목 인천시북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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