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한미 FTA의 일방적 폐기, 자살행위다

3월 15일로 한미 FTA가 발효된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라 더욱 뜻 깊다. 대한민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뛰어 오르는 기회로 활용되길 바라는 맘 간절하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대로라면 발효된 뒤에도 앞날이 순탄할 것 같지 않다. 언제부턴가 야권의 이념적 구심점이 돼버린 통합진보당은 집권을 하면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공언을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도 비슷한 입장이다.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면재협상이라는 카드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폐기에 가까운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또 국회에는 이미 한미FTA의 이행을 위해 개정한 법률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입법안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그 법들이 통과된다면 설령 전면 폐지는 안하더라도 한미FTA는 국내법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조약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반대론자들의 이런 태도는 국제법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이미 체결된 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무법자의 태도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체결한 양자간 조약은 2천200여개, 다자간 조약은 60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우리가 일방적으로 폐기한 조약은 하나도 없다.

 

유독 한미 FTA에 와서 문제가 되고 있는 ISD(투자자 국가 소송 제도) 역시 그렇다. 이 제도는 대한민국이 체결한 81개 국가와 모든 투자보장협정에 포함돼있다. 그 중에서 한 건도 ISD가 문제가 되거나 한국이 일방적으로 문제 삼은 적이 없다. 한미 FTA의 일방적 폐기는 그 동안 쌓아온 국제사회에서의 신용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신용 무너뜨려

 

막무가내인 나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와 국가간의 분쟁을 다루는 ICSID(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국제 투자자-국가 재판소)에 142개국이 가입돼 있는데 2000년대에 볼리비아와 에쿠아도르가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베네주엘라 역시 탈퇴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정유회사 등 외국인 투자기업을 국유화로 추진하다보니 국제규범의 통제 하에 있는 ISD 절차가 걸림돌로 등장했다. 그래서 조약 탈퇴 마저도 불사한 것이다.

 

우리가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거나 ISD 조항 등을 거부한다면 국제적인 막가파의 일원이 될 것이다. 한국은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모랄레스의 볼리비아와 같은 수준의 나라로 인식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세 나라는 가진 자원이라도 많다. 막대한 석유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 무법자의 오명조차도 감수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한국은 그럴만 한 것이 없다. 손해만 있을 뿐이다. 우선 외국인 투자 유치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투자 자산의 안전이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 어떤 외국인이 투자를 하겠는가.

한미 FTA 폐기 있을 수 없는 일

 

더욱 걱정인 것은 한국인의 해외투자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중국과 인도 등에 큰 투자를 해오고 있다. 한국은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지 않으면서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 한국인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염치가 없다.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겠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무법자가 되겠다는 말과 같다. 땅도 좁고, 자원도 없는 나라, 그래서 많은 것을 외국으로부터 들여다가 살아야 하는 나라로서는 자살 행위다. 그렇게 해서 북한의 독재자와 가까워지는 것 이외에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한미FTA 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정 호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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