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백이 황소’의 눈물

[문화카페]

소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그림과 동행했다. 농경사회인 조선시대의 그림에서 소는 듬직한 일꾼이었다. 공재 윤두서의 ‘산골의 봄’과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등에서 소는 부지런히 논밭은 갈고 있다. 이른바 ‘일하는 소’다.

 

자아표출을 연기한 소도 있다. 요절한 이중섭의 소가 대표적이다. 대담한 붓질로 표현한 이중섭의 소는 골격이 드세고 힘차다. 평화로운 소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저돌적이다. 그것도 토종한우인 ‘칡소’에, 수컷이다. 1951년 이후의 소는 철저하게 이중섭 자신을 상징한다.

 

6·25전쟁 중의 피란생활과 가족과의 생이별 과정에서 소는 역동적으로 변한다. 몸부림치는 소의 포즈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친 한 사내의 초상이 겹쳐진다. 부인과 자식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남은 이중섭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이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듯이 소로 변해서 자신을 위로한다.

 

작고 단순한 그림을 그린 장욱진도 소를 즐겨 그렸다. 그의 소는 간결하고 유머러스하다. 동그라미로 된 눈과 두 개의 선으로 조형된 코뚜레, 그리고 뿔, 치솟은 엉덩이로 소의 특징만 살렸다. 극도로 단순화된 이미지는 어린아이 낙서 같다. 천진난만하다.

 

이중섭의 소가 화가의 분신이라면, 장욱진의 소는 가족이다. 이중섭의 소가 수컷이라면, 장욱진의 소는 대부분 암컷이다. 소의 표정도 이중섭의 소처럼 고통스럽지 않고 평화롭다. 주인을 닮아서 심성이 맑고 착하다. 장욱진의 탈속적인 조형세계에서 소는 가족이자 고향이고, 낙원의 동반자였다.

자식같던 소 아사시킨 절박함

 

80년대에 이르면 농촌 현실을 반영한 소가 등장한다. 민중미술가 이종구의 소는 당시 우루과이라운드에 짓밟힌 농촌의 참상을 증거한다. 선하게 팬 쌍꺼풀과 긴 속눈썹이 아름다운, 깊고 검은 눈동자로 무너져가는 농촌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세밀화를 그리듯이 극사실로 그렸다. 순박한 얼굴에서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소들은 상처 입은 농촌을 배경으로 장승처럼 서 있다. 마치 그늘진 현실 앞에 서 있는 아이의 표정 같다. 암울한 풍경과 순박한 얼굴의 대비는 우리가 외면하고 살아온 농촌의 실상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종구의 소는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의 환부를 보여주는, 현실에 발언하는 소다.

 

소들이 굶고 있다. 심지어 굶어죽는 소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소 값이 폭락하고 사료 값이 폭등하자 사료를 먹일 수 없어서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가족이었던 소의 죽임은 농민들이 선택한, 생명을 담보로 한 무언의 저항이다.

농민들 눈물 닦아줄 처방 필요

 

자신이 키우던 소를 굶겨 죽이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주인은 밤낮으로 고민하지 않았을까. 손해를 보고 계속 사료를 먹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또 소를 키우는 일마저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더욱이 한·미 FTA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앞날을 보며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래서 주인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위정자들에게 기구한 축산농가의 처지를 호소하듯이 소들을 굶겨 죽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식 같은 소를 아사시킨 행위에서 ‘동물학대’ 운운하기 전에 농민들의 절박한 심정과 축산농가의 현실을 떠올려야 한다. 농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만약 이 시대의 화가들이 소를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더 이상 목가적인 평화로운 풍경의 소는 아닐 것이다. 대신 이종구의 소처럼 농촌현실을 반영하되, 피골이 상접한 이중섭의 소처럼 절규하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한 시인이 노래한 ‘얼룩백이 황소’의 ‘금빛 게으른 울음’(정지용의 시 ‘향수’에서)이 사라진 현실에서, 요즈음 노을은 유난히 핏빛이다.

 

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