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은 악한이다. 대기업과 관련된 일은 웬만하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배당을 많이 하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퍼준다고 뭐라 하고, 배당을 안하면 내부유보가 많다고 비난한다. 투자를 많이 하면 계열사가 늘어난다고 비판하고, 투자를 하지 않으면 기업의 책임을 안하고 뭐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을 대할 때와 비교하면 대기업에 대한 편견은 지나치다. 대기업이 하면 나빠 보이는 일도 중소기업이 하면 오히려 좋은 것으로 간주될 때가 많다. 상속을 대하는 태도는 대표적이다.
대기업의 상속 행위는 거의 범죄처럼 취급을 당한다. 늘 편법이니 탈법이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가 대기업을 벗어나면 상속은 아름다운 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가업 상속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여러분의 느낌이 어떤지 스스로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몇 대 째 내려오는 가업’ 이정도 되면 거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가 된다. 가업승계는 바로 상속의 결과다. 그런데도 그 주체가 중소기업인가 대기업인가에 따라 우리는 정반대의 태도를 내비친다.
中企·대기업에 대한 다른 잣대
대중들의 이러한 태도는 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들의 가업 상속은 어떤 식으로든 막으려던 정부와 국회였다. 그러나 높은 상속 세율로 인해 중소기업 및 중견 기업의 가업 승계가 어렵다는 불평이 이어지자, 부랴부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주었다. 중소기업청은 아예 가업승계지원센터(www.successbiz.or.kr)라는 기관까지 마련했다.
그 자체로서는 잘한 일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 세금을 곧이 곧대로 다 내려면 기업 자체를 팔아야 할 경우가 태반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을 하는 것은 박수를 보낼 일이다. 하지만 왜 중소기업의 가업상속만 선량하고 대기업의 가업 상속은 범죄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답을 알고 싶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일감몰아주기 같은 것도 그렇다. 재벌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상속을 하기 위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상속증여세를 고쳐서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예를들어 지분율 30% 이상)끼리의 거래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이 내부거래라는 것이 재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계열사와의 거래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쉽게 생각해서, 여러분이 식당을 열었다 해보자.
대기업에 대한 색안경 벗어야
그리고 여러분의 친척이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식당에 필요한 생선을 어디에서 구입하겠는가. 당연히 친척으로부터일 것이다. 하나라도 더 팔아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뜨내기 상인보다는 친척을 더 믿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인지상정은 개인이든 중소기업이든 재벌기업이든 다를 바가 없다. 그런 행위를 규제하겠다고 나섰으니 당연히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챈 중견기업들이 하소연을 하자, 정부와 국회의원들도 중견기업을 제외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몰아주기가 해롭다면 중견기업이 해도 나쁜 것이다. 대기업이 하면 나쁘고 중견기업이 하면 좋다는 것은 그저 대기업이 밉다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물론 어느 나라든 대기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공통이지만, 한국처럼 심한 나라는 찾기 쉽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는 중소기업이 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아니 크고 싶어하지 않는다. 새로운 대기업이 잘 등장하지 않는 것도 한국인의 이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에 대한 시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규모가 크든 작든 기업은 기업일 뿐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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