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보다 더 무서운건 난방비”
본격적인 겨울날씨에 접어들면서 경기지역 판자촌 주민들의 힘겨운 겨울나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수십 채의 판잣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판자촌은 화재에 대단히 취약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그보다 어떻게 하면 더욱 따뜻한 겨울을 보낼지가 걱정이다.
14일 오후 2시 광명시 철산3동의 한 판자촌.
시청과 경찰서, 대형 쇼핑몰 등이 자리한 광명 최대 유흥가인 철산역과 불과 100여m 떨어진 이곳에는 약 100채의 허름한 판잣집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전봇대 하나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판자촌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니, 밝은 대낮임에도 성인 한 명 지나가기 벅찰 정도로 좁고 굽이진 골목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가득해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이 좁은 골목을 따라 LP가스통과 세탁기, 보일러, 김장독, 각종 쓰레기 등이 줄을 지어 있었고, 전선들은 비닐과 모포 등으로 덮여 있는 판자 지붕 위를 어지럽게 휘감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 LP가스통·어지러운 전선 즐비
거동 불편한 노인 많아… 불나면 속수무책
주민들 “불안해도 소화기보다 전기장판 필요”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화재 발생 시 대단히 위험해 보이는 이곳에는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은 물론, 화재경보기와 소화전, 소화기, 삽 등 화재진압도구는 찾을 수 없었다.
인근 초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K씨(54)는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열에 예닐곱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며 “진짜 불이라도 한 번 나게 되면 큰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정작 판자촌 주민 L씨(82·여)는 “날도 추운데 불을 끄는 소화기보다 더 필요한 것이 난방을 위한 기름과 가스, 전기장판”이라며 “요새는 기름 값도 많이 올라 밖에는 통 나가지를 않고 집 안에서 이불만 덮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오전 11시에 찾은 광명시 소하1동의 한 판자촌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 역시 비닐과 목재, 스티로폼, ‘떡솜’이라 불리는 단열재 등 불에 타기 쉬운 ‘특수가연물질’로 지어진 50여 채의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화재 위험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이곳 주민 P씨(77·여) 역시 “이곳은 전기고, 수도고 모두 공용이라 비싼 편”이라며 “기름이나 가스를 지원 못 해준다면 전기장판이라도 마음껏 켤 수 있도록 전기료라도 깎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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