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 첫발을 디뎠다. 이곳에 오면 부지깽이 나물과 약초를 먹고 자란 약소 고기와 명이나물 맛을 봐야만 한다고 가이드는 강조한다. 경치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특히 명이나물 맛도 궁금하였다.
인천이나 경기지방 등에서는 흔히 산 마늘이라고도 하는데 울릉도의 해풍과 맑은 공기 속에서 자란 명이 맛은 타지방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강화에서 남편이 ‘산마늘’이라며 한 뿌리 선물 받아 왔기에 화분에 심었으나 곧 죽고 말았다. 그 나물이 명이라니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든다.
백합과의 다년생 식물 명이에는 이름에 걸 맞는 유래가 있다. ‘어려웠던 지난날, 한겨울 지나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양식이 떨어져갔다. 고산지대의 눈이 녹을 때쯤 주린 배를 채우려 눈 속을 파헤쳐 명이의 새순을 뜯어 명을 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하여 얻게 된 이름이란다. 가이드의 설명에 가슴 밑이 저려온다.
명이에는 ‘뿔 명이’와 ‘잎 명이’ 두 가지가 있다. ‘뿔 명이’는 눈 속에서 뜯어낸 잎이 피지 않은 순이며, ‘잎 명이’는 말 그대로 잎이 피어난 상태를 말한다. 일본에서는 수도승들이 섭취하므로 행자나물이라고도 한다는 안내원의 보충 설명이다.
울릉도의 산들은 험악하여 명이를 채취하려면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명이를 뜯다가 추락하면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실제로 명이를 채취하다 떨어져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니까 명을 잇기 위해 먹던 나물이 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다보니 값은 만만치가 않다. 왜 명이를 두고 신이 내린 나물이라 하는지도 이해가 된다.
그 마음을 안고 울릉도의 동쪽 산 정상에 올라 죽도를 내려다본다. 누군가는 죽도가 한 마리 돔 같다고 했으나 내게는 마치 갓 피어난 명이 잎을 차곡차곡 쌓아 절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하지 않도록 바다가 품은 듯 보이는 평평한 섬이 명이나물 잎을 닮아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니리라.
허나, 정작 그 섬에는 더덕만 있다고 했다. 인생살이가 그런 것이다. 있을 것 같은 곳에는 없고 없을 것 같은 곳에는 있는 그런 것. 하여 쉽지 않으니, 마치 내가 살아가는 과정과 닮았지 싶다.
집에 돌아와 시집간 딸에게 명이절임 주겠노라고 전화 넣으니, 어렵게 채취한 나물을 어떻게 먹느냐며 안쓰러워한다. 차마 목안으로 넘기기에 미안하다는 뜻이리라.
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이를 뜯기 위해 밧줄을 타야 하는 이들, 인기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탤런트들, 수많은 사람의 비위를 맞춰가며 속이 없는 듯 비즈니스에 임해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모두가 살기 위해 인생의 밧줄을 타야만하는 것이리라. 그 모두의 살아가는 과정이 경이롭기만 하다.
나의 인생도 반환점을 넘어서나 보다. 이쯤에서 내 인생 후반의 밧줄은 안전한지, 길이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름대로 또 하나의 명품 나물을 키워내기 위한 밧줄잡기일 수도 있을 테니까.
윤연옥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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