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포구 축제는 역사(歷史)다!

인천 소래포구축제가 지난 13일부터 4일간 소래포구에서 열렸다. 올해로 열 한번째를 맞은 소래포구 축제는 5년 연속으로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전국 44개의 문화관광축제에 선정돼 남동 구민의 긍지와 위상을 높이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포구 축제로 자리매김 했다.

 

수도권 유일의 재래어항인 소래포구는 연중 1천5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자립 잡고 있으며, 특히 가을 김장철이 되면 우리에게 더욱 큰 기쁨을 주는 곳이다.

 

올핸 ‘소래야 놀자’ 라는 슬로건 아래 ‘학습과 체험이 하나 되는 놀이 축제’, ‘지역과 주민이 하나 되는 행복 축제’,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생태 축제’를 주제로 35개의 프로그램을 준비해 소래포구의 특색을 살린 문화행사와 각종 체험행사 등으로 진행돼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 잡았다.

 

주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서해안 풍어제로 시작한 축제는 개막공연, 가족노래자랑, 오케스트라 연주회, 7080 콘서트 등 다채로운 공연으로 박수갈채를 받았고, 소래 어촌계에서 진행한 소래특산물 홍보관의 노마진 판매행사는 저렴한 가격으로 싱싱한 꽃게와 새우 등을 판매해 관광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대한민국 대표 축제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소래포구의 역사를 살펴 보면 기쁨보다는 오히려 애환이 더 많이 서려 있는 곳이다.

 

유래상의 ‘소래’란 지명은 첫째,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둘째, 냇가에 숲이 많아 즉 솔내(松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지형이 좁아 솥다, 좁다 등의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를 친히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해 중국 산동선의 래주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이 산에 머물렀다고 하여 그 뒤로부터 소정방의 ‘소(蘇)’자와 래주의 ‘래(萊)’자를 합쳐 ‘소래산’이라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래가 포구 기능을 갖추기 시작한 것도 1930년 일제 강점기 천일염(天日鹽)을 수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인선 철도를 건설하면서 작업하는 인부들과 염부를 실어나르기 위한 배를 정착시킨 것이 시초가 됐다.

 

이렇듯 소래는 멋 옛날 당나라 군사의 주둔지가 지명의 유래로 시작하여 근대에는 일제의 물자수탈, 한국전쟁 실향민 정착 등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발전시켜 왔다.

 

1974년 인천내항이 준공된 후 새우잡이를 하던 소형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한산했던 소래포구가 일약 새우 파시로 부상했으며, 현재는 새우, 꽃게, 젓갈 등으로 널리 알려져 연평균 1천500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관광명소로 발돋움 했다.

 

최근에는 소래, 논현 택지개발 사업으로 대규모 주거지와 상업지역으로 변모해 포구와 어시장 등을 제외하면 예전 모습은 찾아 보기 어려운 신도시가 됐다.

 

그러나 우리 남동구는 소래의 역사를 보존하고 남동구민과 관광객들에게 소래 지역의 전통과 역사를 제대로 알려 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소래포구축제가 열리는 수변광장 인근에 지상 2층, 연면적 1천320㎡ 규모의 소래 역사관 건물이 건축되고 있다. 내년 3월 개관예정인 이 역사관에는 소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교육적으로는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역사, 문화공간으로, 수산물 구매와 관광을 위한 이들에게는 관광안내소로의 기능을 가지고 다양한 전시물과 체험공간을 갖추고 소래포구를 찾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 잡는다.

 

소래포구가 우리 조상의 애환과 힘겨운 삶의 흔적이 서린 역사가 깊은 곳임을 한 번쯤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소래포구축제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래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포구 문화를 접목해 국민들의 즐거운 축제 한마당으로 승화돼야 한다. 배진교 인천 남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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