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전국 최초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것은 송영길 인천광역시장의 약속이기도 했다. 과제의 수행과 관련하여 정규직의 전환기준이나 대상 그리고 예산 등에 대해서 조언과 주문들이 많다. 연구원으로서는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할 것인가는 시민과 행정 그리고 정치의 몫이 될 것이다. 이런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기득권층의 비난이 연구자들의 힘을 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난 8월의 런던 폭동을 떠올린다. 폭동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영국의 진보정당은 연립 정권의 긴축 재정을 문제 삼았다. 그것이 저소득 계층을 괴롭히는 높은 실업률과 불평등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보수정당들은 지역사회의 붕괴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영국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제대로 된 엄격한 규율에 근거한 교육을 하지 않은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말하지만 유럽에서는 훌리건으로 대변되는 또 다른 이미지가 상존하고 있는 점 또한 사실이다.
다양한 분석 중에 관심을 끈 것은 ‘젊은이들이 재미로서, 기분전환을 위해 날뛰고, 그냥 돌아 다니고 있다’는 기사였다. 나이든 세대나 기초생활보호자는 얼굴 없는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지만 젊은이들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중앙집권적이고 비인격적인 복지국가 제도가 이번 폭동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래에 희망이 없는 젊은 세대들의 분노와 무료함이 폭동으로 나타났다는 진단이다. 실업으로 방황하고 있는 청년세대들이 말하고 있다. 부모세대가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폐해와 버블경제로 망쳐놓은 세상의 책임을 왜 자신들이 져야 하는가. 그에 대한 분노의 표시라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 EU와 남미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실업과 비정규직 그리고 빈곤사회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상황을 1848년 공산당선언 전야 혹은 세계 1차 대전의 사회 경제적 분위기에 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업과 비정규직 그리고 빈곤사회라는 망령이 어슬렁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제위기와 EU의 붕괴가능성, 미국의 신용강등과 경기 불황, 일본의 장기 침체와 중국의 급부상 등이 바로 망령이라는 뜻이다.
일해도 부를 축적할 수 없는 계층과 잃을 것이 더 많은 계층의 대립. 지금의 갈등이 혁명으로 가는 또 다른 도화선인지 아니면 새로운 극우주의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없는 세상,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중년에 정리해고를 당하는 세상, 열심히 일해도 가정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세상은 평화로운 사회가 아니다.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노후를 건장하게 보내는 것. 그것이 인간다운 사회의 시작이자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삶의 조건이다. 그런데도 그 조건들이 밑바닥부터 붕괴되고 있다.
그러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노총과 전경련, 그리고 강남좌파에 이르기까지 상대의 책임만을 탓하고 있다. 지금 진보에 절망하면서도 우경화를 원치 않는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들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을 혁명이나 전쟁의 길로 내몰지 말라. 나는 런던의 폭동과 뉴욕의 대학생 시위, 반값 등록금 투쟁과 안철수 현상이야 말로 청년세대와 비정규직이 기득권층에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빈곤사회를 막고, 인간다운 사회의 조건을 만들고자 한다면 기득권층의 양보와 신자유주의와의 결별만이 유일한 답이다. 부유층과 정규직의 희생 없이는 빈곤계층과 비정규직에게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득권층이 답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이기도 하다.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청년들의 분노는 기존질서의 붕괴와 사회 변혁을 향해 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함께 서있는지도 모른다. 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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