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가정, 상가, 공장, 병원, 교통시설, 군시설 등 전국의 광범위한 시설에 정전이 발생했다. 교통신호기가 먹통이 되고, 고층빌딩의 승강기가 멈춰 시민들이 갇히고, 양식 수산물이 죽고, 대학의 수시입시 원서접수도 불가능했고, 군부대 레이더기지까지 전기가 나갔었다.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급증해 전력 시스템에 과부하를 주면 정전사태가 발생한다. 특히 과부하로 전력 시스템이 멈추면, 시설을 수리하고 재가동하기 위해 화력발전소는 최소 3, 4시간, 원자력발전소는 1주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과부하로 가동을 멈춘다면 블랙아웃의 규모나 기간이 확대된다.
따라서 전력 당국은 과부하를 막기 위해 예비전력이 일정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각 가정이나 공장으로 가는 전력을 인위적으로 차단한다. 우리나라도 전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 발생하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30분씩 순환 정전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번 정전사태도 과부하 자체에 의한 정전이 아닌 예방적 차원의 전력 차단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번 정전사태는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전력당국이 여름철 절정 수요가 지났다고 판단하고 정비·점검을 위해 가동 중이었던 발전기 8기를 지난 14~15일 이틀 동안 한꺼번에 세운 것이 적절하지 못했다.
전력거래소가 지난 9일 기상청 예보를 토대로 15일 전력수급계획을 짜면서 서울 낮 최고기온을 28도로 예측해 최대 전력수요를 대비했으나, 기상청이 최고기온을 최고 30도 이상으로 13일 수정 전망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 기상 이변이 빈번한 것을 감안했다면 이틀 동안에 발전기 8기를 한꺼번에 세우는 무모한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예비전력 파악과 차단 절차에 있어서도 문제점이 많았다. 이번 당국의 대처에는 예비전력 파악시 바로 발전이 가능한 전력과 그렇지 못한 전력을 구분하지 않고 부풀리는 거짓도 숨어있었다. 위기관리의 기본이 정확한 상황 파악인데 허위가 허용되는 통제 체계라면 적절한 상황 파악이나 대처는 불가하다.
또 위기대응에 필요한 ‘전기 차단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오래전에 작성됐고, 매뉴얼 절차를 실행한 적이 없는 것도 우리나라가 위기대응에서 선진국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매뉴얼에는 차단 대상인 국민들에 대해 누가, 어떻게 차단 계획을 통보해야 하는지 규정돼있지 않다고 한다.
유비쿼터스 시대, 스마트 시대에 내 사업장, 교통신호등,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 등의 전기를 전력당국이 내게 알리지 않은 채 어느 순간 끊을지 모르는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매뉴얼대로 차단 절차를 수행할 때 효과적 작동에 대한 체계적 장애를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번 정전사태시 우선순위대로 전력을 차단해도, 매뉴얼상 차단제외 시설인 병원, 시청, 경찰서 등 에는 선별적으로 전원을 차단하지 않는 것이 전력선로 상황이나 제어시스템상 상당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실행할 수 없는 매뉴얼을 수정할 것이 아니라 위기관리 체계의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블랙아웃은 ‘대규모 정전’외에 많은 뜻을 함유하고 있다. ‘태양 등의 자연계 이상 활동 등으로 야기되는 대규모 통신 장애’라는 블랙아웃은 지구 온난화 등 예측하기 힘든 자연에 대해 전력당국이 항상 대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보도통제로 기사 방송을 검게 지우는 것’이란 또 다른 어의는 예비전력 파악의 투명성을 확립하고, 전력차단의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라는 역설적 함의라고 주장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질병, 알콜, 약품, 사고 등으로 정신을 완전히 잃는 것’이란 뜻은 전력 뿐만이 아닌 다양한 국가적 블랙아웃에 대비해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혁신하라는 뜻이 아닐런가? 이희상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과·기술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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