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을 복원하면서 그 문패를 한글 현판으로 달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백 번을 말했지만, 급기야 ‘門化光’으로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현판은 몇 달이 지나 갈라지고 깨져서 흉칙하게 되니, 지금은 보수하여 임시로 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문화재청은 새 현판을 달되, 전문가의 의견 수렴과 공청회를 거쳐 심의 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나. ‘복원’이라는 말을 맨 앞에 내세우겠지요.
‘門化光’으로 주장하는 이는 ‘복원’이라는 말을 맨 앞에 내세웁니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갖다 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요,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번 복원이 어떻게 이루어진 겁니까? 1865년 고종 시, 중건 책임자였던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했다구요? 아닙니다. 잘 보이지 않는 글씨체를 디지털로 짜깁기하여 달았습니다. 사실 이 임태영의 글씨는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경복궁영건도감의궤’에 ‘임태영이 썼다는 기록은 있으나 글씨는 남아 있지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門化光’이라는 현판은 복원된 글씨가 아닌 것입니다.
한글 현판 ‘광화문’으로 달기를 바라는 국민들은 ‘崇禮門’ 복원 현판에 대해서는 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복원’이라는 역사의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 박정희 글씨 현판 ‘광화문’ 기간이 40년입니다.
1962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한글 현판 ‘광화문’으로 달았습니다. 그 기간이 4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누구 하나 한글 현판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40년은 참 긴 세월이고 한 역사입니다. 설마 그 기간을 없다고 할까요?
또 그 글씨들을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짜깁기한 실체 없는 ‘門化光’은 다만 두루뭉술할 뿐 아무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박정희 시 복원 현판을 보시지요. 그 자유스런 분방, 힘 있는 뻗음-그것이 박정희 글씨체였습니다. 이것은 국민이 본 감정이며, 다수의 서체 연구가나 유명인이 보는 느낌도 같습니다.
40년간 써온 것을 다시 갖다 놓는 것이니 그게 분명 ‘복원’입니다. 그리고 임태영 글씨가 조금이라도 흔적이 있다고 보더라도 임태영, 박정희 중 누구 글씨체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셋. 누구입니까? 남의 집 대문에 남의 나라 글자를 달자니.
디지털 짜깁기로 ‘門化光’으로 써붙였던 때, 나는 우리나라에 유학 온 중국 유학생과 광화문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현판 ‘門化光’을 본 학생이 내게 묻습니다. “선생님, 저게 어찌 된 일입니까? 한글이 세계 으뜸 글이라고 하면서 한자(漢子)로 하다니요?” 나는 하도 부끄러워서 금방 대답할 길을 잃었습니다.
세종로, 세종대왕상, 이순신 장군상 그리고 광화문이 있는 거리는 우리 나라 안마당을 거치는 대문입니다. 그곳에 생각 없이 ‘門化光’으로 달다니요? 천만부당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요?
현판 다는 일은 한글 현판 ‘광화문’으로 달아야 역사적 의미가 있는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내 얼굴을 똑바로 들고 떳떳하게 응시하여야 합니다. 우리 글의 자랑을 꿈으로 내뿜어야 합니다.
박병찬 한글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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