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용사 교육도 못 받은채 고엽제 무방비 노출
<3> 다이옥신 공포
■ 고엽제 40년의 고통
“고엽제가 모기를 쫓아주길래 전우들끼리 몸에 나눠 바르곤 했지 이렇게 무서운 물질인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16일 오후 선풍기 바람을 쐬인 월남 참전용사 강대승씨(64)는 기침과 함께 핏덩어리를 쏟아냈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인 강씨는 “미군들이 밀가루 같은 분말을 주고 부대 인근 나무를 죽이라고 시켰다”며 “고엽제인 줄도 모르는 우리는 맨손으로 깔때기에 고엽제를 담아 휘휘 뿌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씨는 지난 1971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뒤 1976년부터 관절염 등의 증상이 나타나 현재까지 고엽제로 인해 기약없는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위 절제술로 위가 최소량 밖에 남지 않은데다 폐가 2/3 정도가 굳어 호흡상태가 좋지 못해 일상생활조차도 버거운 실정이다.
고엽제 후유증 중등도 장애판정을 받은 강씨는 “평균 38~40도를 웃도는 베트남에서 고엽제를 몸에 바르면 모기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며 “나를 이렇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전우들끼리 나눠 발랐다”고 전했다.
이어 강씨는 “미군기지에 고엽제가 묻혀 있어 두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직접적으로 고엽제에 노출돼 있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면서 “죄없는 우리는 고엽제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게 됐다”고 속상함을 털어놨다.
현재 강씨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보상금은 50여만원 남짓.
평생 딸들에게 아픈 몸 때문에 해준 것이 없어 그저 내색 한 번 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강씨는 “국가와 민족,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했지만 정부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은 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자체들의 보상기준이 천차만별이어서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한 수평적 복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고엽제 후유증 경도 판정을 받은 이근식씨(63) 역시 한눈에 보기에도 거동이 많이 불편 해보였다.
이씨는 지난 1969년 4월 베트남으로 가 13개월 동안 고엽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이씨는 “사람이 고엽제를 뿌리는데 한계가 있어 미군들이 고엽제를 물에 타 비행기에서 뿌렸었다”며 “우리는 더운 날씨에 하늘에서 뿌리는 물이 시원해서 웃통을 벗고 심지어 입을 벌리고 그 몹쓸 물을 마시기까지 했다”고 때늦은 후회를 했다.
지난 1990년 초 몸이 가렵고 다리에 힘이 풀릴 때만 해도 이씨는 ‘고엽제 피해자는 절대 아니다’는 확고한 희망이 있었다.
무더위에 헬기서 뿌리는 고엽제 목말라 받아 먹기도
주성분 다이옥신 청산가리의 1만배 독성으로 치명적
하지만 이런 희망도 잠깐일 뿐 이씨는 고엽제로 인해 오른쪽 다리 말초신경이 끊어져 현재 다리에 보조기구를 끼고 지팡이에 의지해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수원에 살고 있는 강씨와 이씨 모두 고엽제 환자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시에서 참전유공자에게 매달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 3만원조차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수원시가 도내 타 시·군가 달리 만 65세 이상인 참전유공자에 한해 매월 3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는 국가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기 때문이다.
김회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경기도지부 총무사업부장은 “불공평한 기준으로 차등적용을 하는 조례로 몸도 마음도 다친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명확한 조사를 통해 수박 겉핥기식 행정이 아닌 피해의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행정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도내 베트남 참전 용사 중에 고엽제 후유증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이 2천210여명에 달하고 후유증 등외 1천987명, 후유의증 6천89명, 후유의증 등외 6천311명 등 1만6천여명이 고엽제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 1급 발암물질 다이옥신
경기도내 미군기지가 있는 지자체들은 최근 퇴역 미군의 고엽제 매립 증언에 따라 반환되지 않은 미군기지 28곳 주변의 지하수와 토양을 대상으로 다이옥신 오염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은 다이옥신 조사 결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다이옥신의 위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이옥신은 물질이 타거나 산업활동 등으로 인해 생성되는 부산물로 유기화합물과 염소가 결합해 발생되는 화학물질로 종류만 210종에 이른다.
현재 다이옥신이 고엽제의 주성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고엽제를 만들 때 제초제 2, 4, 5-T와 2, 4-D를 혼합 제조하는 과정에서 독극 물질인 다이옥신이 미량 생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2, 3, 7, 8-TCDD 다이옥신은 효소에 의해 분해되지 않고 DNA와 결합해 유전정보를 교란시켜 세포의 성장과 분할에 이상을 일으키게 되는 1급 발암물질이다.
다이옥신이 인체에 축적되면 면역체계의 이상과 호르몬 조절기능에 변화를 주어 간암 등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청산가리보다 1만배나 강한 독성을 가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군이 지난 1961년 베트남 전쟁에서 10여년 동안 산악과 농경지 등에 고엽제를 살포했으며 최근 퇴역 미군은 고엽제를 국내 DMZ에도 살포하고 일부 미군기지에 매립했다고 증언했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생활주변에서 다이옥신류의 발생은 광범위하나 모두가 자연적 또는 인간의 산업활동에 의해 부산물로 발생된다”며 “다이옥신은 산불, 번개, 화재 또는 화산활동 등의 자연적 발생원과 화합물제조, 폐기물제조, 폐기물소각, 자동차 배기가스, 담배연기 등 인위적인 발생원에 의해 생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 연구는 걸음마 수준
다이옥신은 일반적으로 토양, 잔디, 초목 및 지표수에 침적된 후에 동물에 의한 섭취, 생체축척에 의한 먹이 사슬에 의해 인간에게 흡수된다.
해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이 다이옥신을 97%는 음식물을 통해 나머지 3%는 호흡을 통해 흡수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물실험 등 간접적인 자료에 의하면 다이옥신이 인체에 미치는 대표적인 영향은 생식계독성, 발암성, 면역계 독성, 호르몬 조절기능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방법이나 측정기준이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도보건환경연구원은 먹는 물과 대기, 토양에 대한 다이옥신 오염기준과 위해성 평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암연구소 발암도 분류에 따르면 다이옥신 2, 3, 7, 8-TCDD는 1급 인간 발암성 물질로 분류되고 있으며 부천 캠프 머서에서 검출된 TCE와 PEC 등 63종은 2A 발암물질, 납, 클로로포름 등 248종은 2B 발암물질, 멜라민, 카페인 등 1천515종은 3급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
경북 왜관 캠프 캐럴 주변에서 한미공동조사단은 하천수 6개 지점을 조사해 3개 지점에서 극미량(0.001~0.010 pg-TEQ/L)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검출량에 대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미국 환경보호국(EPA) 뉴욕주(NYSDEC)의 먹는물 기준(2,3,7,8-TCDD 30pg/L)의 3천분의 1에서 3만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며 최근 왜관지역 기존 조사결과 평균(0.070 pg-TEQ/L)과 비교해도 1/7에서 1/70수준이다.
고엽제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급성적이고 관측이 용이한 증상을 제외하고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다이옥신이 인체에 미치는 독성에 대한 위해성 평가연구가 앞으로 요구되고 있다”며 주한미군의 성실하고 공정한 진상조사 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소파 개정 등 법률 대응 활동도 펼칠 예정이며 칠곡, 부평, 용산 등 고엽제와 독성물질 매립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정부와 미군에 책임을 묻게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기획취재부=최원재·장혜준기자 chwj74@ekgib.com
인터뷰 안명균 경기환경연합 사무처장
“미반환기지부터 철저한 조사를”
다이옥신과 유해물질에 대한 환경오염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으면 미군기지가 반환된 뒤 수십년이 지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안명균 경기환경연합 사무처장은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에 대한 실제적인 피해현황을 파악해 현실적인 대책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개발 이전 피해 확인
오염주체의 책임
명확히 규정지어야”
안 사무처장은 “현재 사용중인 미반환기지 주변의 지하수 오염 조사보다 반환된 기지의 조사가 선행되야 개발 행위 이전에 환경오염 피해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며 “현재 표본 추출 방식으로는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매립 의심 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안 사무처장은 “다이옥신 오염이 밝혀져도 현존 기술로는 완전 치유가 불가능한 만큼 오염 주체에 대한 책임 문제를 명확하게 규정지어야 한다”며 “미군, 정부, 지자체,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