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매몰지 침출수 심각
코를 틀어막지 않고는 바람을 안고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공동묘지 인근에 조성한 소·돼지 무덤에선 지독한 악취와 함께 기름기 섞인 시뻘건 물이 나와 도랑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13일 찾아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곡리 구제역 매몰지는 처참함 그 자체였다. 지난 1월 구제역 발병 이후 소 571마리, 돼지 1800마리를 구덩이 6곳에 나눠 묻은 곳이다. 붉은 물이 고여 있는 도랑 주변엔 완연한 봄기운 속에도 풀이 자라지 않았다.
도랑에 내려서 보니 매몰지가 위치한 쪽에서는 뻘건 물이 흘러들었고 매몰지가 없는 반대편에서 나오는 물은 투명했다.
이 매몰지는 지난달 환경부의 일제조사 이후 우선 보완 대상으로 선정돼 옹벽을 쌓는 등 보강공사를 거쳤다. 기습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시간에 쫓기다 보니 하천에서 5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축들을 묻었다. 축산농가 주변 공유지에서 마땅한 터가 이곳밖에 없었다는 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환경부의 매몰지 관리 지침은 하천에서 30m 이상 떨어진 평평한 곳에 가축을 묻도록 규정하고 있다. 혹시나 침출수가 흘러나와도 하천에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로 안전거리를 확보하라는 취지다.
동행한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팀은 장비를 꺼내 시료를 채취하고 현장을 촬영했다. 시료를 분석하면 침출수의 영향인지 판단할 수 있다. 결과는 보름 후쯤 나온다고 했다. 김정수 부소장은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렇다 해도 이게 침출수인 것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2주 전에 찾아왔을 때는 옹벽 앞 도랑 일부만 물이 붉은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름띠가 도랑 전체에 퍼졌다.
김 부소장은 “이 지역은 안성시가 구제역 매몰지의 모범 사례로 소개하며 ‘완벽하게 공사를 끝냈다’고 자부하는 곳이었는데도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논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기름이 아니다. 침출수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했다. 이어 “매몰한 지 2개월 만에 이렇게 된 것이니 앞으로 2개월이 더 지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랑의 물이 온통 붉은 것은 핏물이 흘러나온 게 아니라 가축 사체에서 나온 철분이 산화됐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안성시는 “침출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있으며 시료를 채취해 분석을 의뢰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기름띠는 굴착기 작업 과정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침출수는 매몰지에 설치된 집수정에 모았다가 차량으로 수거하는 만큼 매몰지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안성시의 입장이다. 단백질을 검출하는 뷰렛반응 시험을 했는데 음성으로 결과가 나온 것도 침출수 유출이 없었다는 근거로 내세웠다.
매몰지에서 나오는 길에 주민 홍모(57)씨를 만났다. 홍씨는 “구제역 침출수가 걱정돼 지하수를 못 마실 것 같아 상수도를 놓기로 주민끼리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동네가 근방에서 소를 가장 많이 키워서 피해도 가장 컸다”며 “7년 전에도 구제역이 발생했었는데 그게 또 반복됐다. 그때도 자기 집 뒤에 (가축을) 묻고 땅 팔고 이사 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가축을 다시 들이지 못해 텅 빈 화곡리 축사에는 찢어진 천막 조각이 악취 섞인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