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강(江)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문명 발상지는 모두 강에서 시작한다. 강이 주는 혜택은 바로 원시적인 생활에서부터 시작하여 보다 세련된 문명이 형성되기까지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분기점도 대부분 강에서 비롯됐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사례의 단면으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결단을 내렸다. 융성한 모든 나라들은 모두 치수(治水)를 기본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이성계는 압록강의 하중도(河中島)인 위화도회군으로 조선을 개창했다. 제퍼슨 대통령이 계획한 루이스와 클라크의 미주리 강 탐험은 프런티어를 미국의 정신으로 만들어냈다.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을 부흥시킨 것 또한 라인강이 아니었던가?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연출한 지 40여 년이 지났다. 이제 남한강은 한강 살리기 사업으로 대전환을 맞고 있는 것이다. 남한강은 조선시대 조운의 중심지였다. 강원의 흥원창과 충주의 덕흥창에 모인 곡물은 조포와 이포나루를 거쳐 서울로 이송했다. 이 배가 바로 ‘황포돛배’이다.
남한강은 유사(流砂)현상이 심하고 곳곳에 여울이 있어 배의 왕래가 쉽지 않았다. 여주 목은 이포와 양화에 수참(水站)을 설치하고 수부 30명과 참선 15척을 설치해 길이 3m의 가래로 뱃골을 파는 일을 담당했다. 현재의 보(洑)가 설치된 곳은 모두 옛날부터 여울이 있던 자리인 것이다.
현재 건설되는 강천보 아랫부분은 마탄(馬灘)이라는 여울로 임진왜란 당시 원호장군은 이곳에서 왜병을 섬멸시켜 전공을 세우고 명성을 얻었다. 왕대리 섬 주변은 ‘제비 여울’(燕灘)로 여주팔경인 연탄귀범(燕灘歸帆)의 탄생지이며 목은 이색의 전설이 숨어 있는 곳이다. 이포보 아래는 외평리 여울이다.
금사면 전북리부터 점동면 삼합리까지 38.9㎞에 이포, 여주, 강천 등 3개소의 보와 20개소의 생태하천, 1개소의 저류지, 72.1㎞의 자전거도로를 만든다.
여주군에서는 이렇게 유서깊은 남한강을 강과 숲이 어우러지는 최적의 휴양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4월 5일 식목일에 ‘희망의 숲 조성행사’를 실시한다.
이 행사는 2011년 4월 5일 대신면 천서리 508번지(당남지구)에서 열리는데 여주군이 의욕적으로 앞서 추진하고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산림청, 경기도 등이 후원하면서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강과 나무의 조화를 위해 여러 측면에서 심사숙고 끝에 2010년 11월 수종을 선정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며 검증과정을 거치는 노력 끝에 이팝나무 100주, 산철쭉 1,500주를 심기로 결정했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일반인은 물론 여주군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 등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연을 타임캡슐에 담아 20년간 보관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다.
수종 중에 이팝나무를 선정한 것은 그 이름이 쌀 나무로 불리면서 여주 쌀의 이미지와 특산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나무의 식재 양은 100주로 그루당 가격은 45만 원 정도다. 이를 선택하면 15자 내외의 희망문구와 이름표를 붙이고 앞으로 2년간 산림조합에서 별도 관리해 주기도 한다.
여주는 조선시대 426년간 목(牧)으로 존재한 경기좌도의 으뜸 지역이다. 남한강 주변에 세종·효종대왕릉, 신륵사, 명성황후생가, 황학산 수목원, 목아박물관 등 유수의 유적지가 분포돼 있다. 이 명승유적들은 남한강 명품 보와 자전거도로, 생태공원과 더불어 새롭게 조성된 희망의 숲에서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주의 새인 백로를 상징화한 이포보, 시대의 문을 연 세종대왕의 정신을 형상화한 여주보, 남한강에 비춰지는 또 다른 세상이란 강천보가 있다.
남한강 여주구간은 자전거 도로는 물론 축구, 족구, 야구, 농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다목적코트, 오토캠핑장 등 스포츠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들어선다.
한강살리기사업으로 조성된 여주의 남한강 생태하천에서 새로 태어나는 여주의 숨결을 만끽해보자.
한경남 여주군 한강살리기사업지원단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