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다. 종자를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다. ‘총성 없는 종자전쟁’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말 그대로 종자 확보를 위한 각 나라들의 각축전이 총만 들지 않았을 뿐 그만큼 치열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가 종자 확보를 위해 이토록 노력을 하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 식탁에서 먹는 밥, 김치, 찌개와 같은 주식과 부식에서부터 사과, 배, 딸기, 수박과 같은 과일과 채소까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들은 거의 대부분 종자, 즉 씨앗에서 얻어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통일벼’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다. 1960년대 말 연이은 가뭄과 석유파동으로 식량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절,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수량이 많고 병 저항성이 강한 새로운 품종의 쌀이 필요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1965년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자포니카형 일반벼와 인디카형 남방계통 벼를 교잡하여 일반벼보다 40% 이상의 수량을 얻는 ‘통일벼’를 개발해 녹색혁명의 신화를 이룩했다. 이처럼 신품종 개발의 원재료가 되는 종자를 ‘식물유전자원’이라고 한다. 통일벼처럼 신품종을 개발하려면 우수한 유전자원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유전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해 왔다. 미국은 18세기 말부터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보존했으며 일본도 일찌감치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깨달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토종 자원을 수집해 일본으로 가지고 갔다. 우리나라가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던 시절, 일본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유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벼와 콩 등의 토종종자를 수집해간 것이다.
종자전쟁의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개발된 신규의약품 가운데 60%가 유전물질에서 비롯됐다. 식물 재료들이 의약품을 비롯한 많은 상품개발에 적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유행하여 각국에서 백신 확보에 혈안이 되었던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 역시 중국과 베트남에서 향신료용으로 재배되는 스타아니스에서 추출된 것으로 식물 종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보유한 종자를 잘 활용하여 어떤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창출해 내느냐 하는 것이 농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5%내외로 OECD 국가 가운데 꼴찌다. 쌀 95%를 제외하면 자급률은 5%미만인 것이다. 더욱이 기상이변과 같은 자연재해, 무역 제한 등 변수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식량안보가 이제는 더 이상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앞으로는 외국의 쌀을 비싸게 사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와 후세들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러시아 등 선진국보다 150여년 뒤처진 1987년에야 농촌진흥청에 종자은행을 설립, 우리나라 재래종은 물론 우리나라와 기후대가 유사하거나 활용가치가 크다고 보이는 유전자원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하여 식물유전자원 18만9천여점, 미생물, 곤충, 가축 등 총 27만2천여점을 수집해 세계 6위의 유전자원 수집 국가가 됐다.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종자강국 달성을 위해 우수한 유전자원을 많이 확보하여 활용할 계획이다. 지속적인 국내외 유전자원을 수집하거나 도입하여 2020년까지 34만4천점으로 늘려 세계 5위 수준으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넓지 않은 영토에서 식물유전자원수 6위도 큰 재산이지만, 일본을 제치고 5위로 등극해 종자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할 모습이 기대된다. 박홍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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