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여, 정말 시간제를 원하는가?

기대소득 대비 실효성 없어 고용안정 문제 해결해야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유연근로제 등과 같은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오래 전부터 여성고용과 관련된 정책방안에서 빠지지 않던 것이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통해 여성인력을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굳이 여성에게만 시간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본 이러한 정책기조의 핵심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다. 요즘에 시간제 일자리와 관련된 정책은 대부분 ‘가족친화’ 또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이라는 보다 고상한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과거처럼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는 ‘생계부양자’인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한 것 같다. 이러한 주장을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여성들이 시간제를 원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정말 시간제를 원하는가? 최근 필자는 화성시를 중심으로 ‘지역여성의 자녀양육 및 취업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조사결과 현재 미취업상태이지만 향후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원하는 고용형태는 시간제 취업이 54.0%로 가장 높았다. 시간제를 원하는 여성 10명 중에 9명은 그 이유가 역시 ‘자녀’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여성들이 시간제를 원한다’는 통념이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시간제 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의 기대소득이다. 조사결과 시간제 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의 기대소득은 월평균 128만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소득은 현재 취업여성의 소득에 비추어 볼 때 노동시장에서 실제 받을 수 있는 소득과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조사대상 여성 중에서 현재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시간급여를 기준으로 보면 5천원이 46.2%로 가장 많다. 시간당 5천원을 기준으로 시간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기대하는 월평균 소득 128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월 256시간 정도를 일해야 하는데, 이는 주당 50시간 이상 일해야 가능한 것이다. 사실상 전일제 근무라고 볼 수 있다. 화성지역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지만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위와 같은 조사결과는 단순히 ‘여성들이 시간제를 원한다’는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인식에 기반해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시행할 경우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원하는’ 시간제와 실제 노동시장에서 창출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월 20일, 하루 5시간, 시간급 5천원을 받고 일한다면 월소득은 약 50만원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며, 고용안정은 논외로 하더라도 현재의 조건에서 시간제 근로가 여성들이 ‘원하는’ 일자리로서 기능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통해 여성인력을 활용한다’는 정책방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이 의미있는 여성고용정책이 되려면 전제되어야 할 조건들이 많다. 우선, ‘시간제 일자리 = (최)저임금 일자리’ 라는 등식이 사라져야 한다. 임금은 일자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데 현재의 시간제 일자리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저임금 일자리’ 이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시간제 일자리 = 비정규직’ 이라는 등식도 사라져야 한다. 시간제 정규직 일자리 창출을 통해 고용안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사라져야 한다. 시간제가 현재와 같이 대부분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이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현재와 같이 발생하는 조건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오히려 시간제 일자리창출을 정책방안으로 추진하기 전에 위와 같은 전제조건을 만드는 것에 정책의 초점을 맞춘다면 진정 여성들이 ‘원하는’ 시간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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