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口卒啄同時>

줄탁동시(口卒啄同時) 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알 속의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하여 안에서 껍질을 쪼는데 이것을 ‘줄(口卒)’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바깥에서 껍질을 마주 쪼아 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줄탁은 어느 한 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만약에 껍질 안의 병아리가 힘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껍질 바깥 어미 닭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어미 닭은 껍질을 다 깨어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 껍질을 깨뜨릴 때만 도와준다. 나머지는 안쓰럽지만 병아리가 스스로 깨고 나오도록 놔둔다. 그래야만 껍질을 깨고 날개를 퍼덕이며 억지로 빠져 나오는 동안 날개와 다리가 튼튼한 건강한 병아리가 된다.

 

농업인과 정부의 관계가 바로 줄탁동시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농업은 제조업과 달리 농업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에 의해 생산성이 저조하고 투자회임 기간이 길고 자연재해 등 우발적인 요인들이 많아서 제조업에 비해 여러 가지로 열세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농업인은 병아리에 비유할 수 있고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1994년 UR 농어촌 대책으로 57조원, 2003년 한·칠레 FTA·DDA 대책에 119조원 등 농업 부문에 많은 지원을 했으나 농업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뉴질랜드의 농정 개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1982년 뉴질랜드 농민연합은 인플레를 막기 위해 인플레의 주범인 농업보조금 삭감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후 3년간 농가수익성 저하, 농지가격 급락, 부채 급증, 농촌지역경제 침체 등 고통스런 시기가 있었으나 일관된 개혁 정책을 유지하였다.

 

한편 정부는 농정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친 동시적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개혁을 통한 고통을 농민을 포함해 국민 전체가 분담하였다. 개혁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채 재조정을 통한 농가 회생 프로그램 실시, 한계 농가에 대한 한시적인 특별영농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해서 뉴질랜드는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농업구조로 탈바꿈하였다.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귀농을 해서 친환경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어느 회장의 성공 사례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23명의 회원이 연간 26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정부를 비롯한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영농비가 적게 드는 자립형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탁’의 의미로 농업인들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을 하고 신품종 개발, 기술개발 R&D 투자, 농지은행 및 농지의 장기임대차 문제, 농업정책자금 금리 인하, 자연재해보험 확대 등 농업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여야 한다.

 

농업인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서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듯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농법이 개발되는 등 창의가 나오고 경쟁력이 생긴다. 하느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구자대 농협구미교육원 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