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이 정상인 시대

집값 하락이 심상찮다. 성급한 논평자는 집값이 6분의 1까지 떨어질 터이니 팔 수 있을 때 팔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 정도면 혹세무민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집값 하락이 대세’란 믿음이 대세인 듯하다. 집값의 하락은 부동산 시장을 달굴 땔감이 외부로부터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한국경제의 전체 문제와 관련된다. 말하자면 최근 부동산 시장 위축은 내부요인보다 한국경제의 성장 체질 약화란 외부요인과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지난 20년간 3분의 1로 급락했다. 1986~1990년 사이 10.1%였던 잠재 성장률은 1991~1995년 7.5%, 1996~2000년 5.4%, 2001~2005년 5.1%, 2006~2009년 3.0%로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성장 둔화는 1998년 IMF 환란을 겪으면서 두드러졌다.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과잉화 된 경제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경쟁력을 구비한 성장부문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환란 뒤 한국경제도 구조조정과 함께 IT 붐 등의 덕택에 잠시 반짝하는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이는 잠시였다.

 

장기 저성장·저소비·고실업 사회

누적된 성장의 한계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해 환란 이후 한국경제는 ‘긴 불황, 짧은 호황’의 사이클을 반복해 왔다. 이는 ‘긴 호황, 짧은 불황’을 반복하던 이전의 성장 패턴과 극명하게 비교가 되었다. 호황보다 불황이 더 길어지는 것은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 성능이 떨어진 자동차의 속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선진국들은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후 2만달러에 도달하는 데 평균 9.2년 걸렸다. 한국은 1995년 이래 15년 이상 국민소득 1만달러대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소득이 오르면 성장률이 더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1인당 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섰던 선진국들은 평균 성장률이 2만달러 달성 이전 10년간 평균 3.3%에서 이후 10년간 평균 2.8%로 떨어졌다. 우리나라도 2만달러대로 넘어간다 해도, 또 다른 저성장의 긴 늪을 지나야 한다. 경제협력기구(OECD) 조사에 의하면 2012~2025년 중 우리의 평균 잠재 성장률은 2.4%로 예측되고 있지만 실제 그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대 발맞춘 신개념 국책 필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경제는 장기적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이 보편화되는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해외시장에 깊숙이 의존해 있는 한국의 성장체제는 안팎으로부터 전에 없는 성장저하의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이 새로운 정상이 되면 고성장에 맞춘 경제적 삶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다. 고령화, 저투자, 저생산성, 소득 양극화, 실업, 저소비 등이 저성장의 정상화 시대에 통용되는 주요 경제언어가 될 터이니 말이다. 부동산 시장 위축은 저성장이 정상인 시대로 나가는 초입에서 목격하는 새로운 풍경의 하나일 뿐이다.

 

저성장 시대를 염두에 둔다면, 현 정권의 747 고도성장, 4대강 정비와 같은 토건개발 중심의 부양정책, 지자체의 공급확대형 개발정책들은 모두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저성장시대 국민경제를 건강하게 할 신개념의 국가정책이 절실하다. 성장 중심에서 배제된 부분(중소기업, 자영업, 농업)을 메우는 ‘충진(in-fill)식 산업정책, 국민을 ‘장인화’ 하는 스위스식 교육정책, 노인과 여성 등의 경제활동을 돕는 복지연동형 고용정책, 토지의 재활용을 우선하는 도시정책, 사회적 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사회경제’정책 등 대안은 수 없이 많다. 구슬을 꿸 국민의 지혜가 필요하고, 이를 도닥여 줄 지혜로운 지도자가 전에 없이 기다려지는 때인 것 같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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