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경제개념을 앞세운 ‘슈퍼실버’가 뜨고 있다. 자식에게 전 재산을 아낌없이 상속하고 손주들을 돌보며 ‘내리사랑’을 베풀어 온 이 사회의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 점차 변하고 있는 것이다.
급속도로 이어지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후는 내힘으로 살겠다는 강한 의지들이 곳곳에서 엿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재산목록 1위인 주택을 매달 연금처럼 노후 생활비를 받는 제도인 ‘역(逆)모기지론’ 신청자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1천명을 넘더니 올들어 이미 900명을 돌파, 1년사이 2천명에 육박할 조짐이다.
과거 주택은 자식 몫으로 유산의 일부분이라는 사회통념을 과감히 깨버린 것으로 나이가 들어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기존 생활패턴을 옛말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생을 자녀를 위해 열과 성을 바친만큼 이제는 효도를 받아야 한다는 ‘초슈퍼 실버’까지 등장했다.
기자와 평소 두터운 정을 나누는 한 지인의 부친은 얼마전 자식들에게 한통의 메일을 보냈다. 이 노신사는 메일 첫 문장에 “안경, 메이커 옷, 신발, 골프채, 화장품 등 10여가지는 하늘로 가기전까지 자신이 절대 살수 없는 품목”이라며 “그동안 키워준 부모에 대한 최소한 예의로 앞으로 이 품목이 떨어지기 전에 꼭 사오라”고 선포를 했다.
선뜻 듣기에 어느 드라마같은 지인 식구의 후속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비교적 무난한 성격인 자식형제들은 각자 경제사정에 맞게 품목들을 나눠 키워주신 보답(?)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어느정도의 경제력과 자신감을 앞세운 슈퍼실버들이 급변하는 사회의 단면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슈퍼실버들이 노인중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100만명의 독거노인이 거주하고 있는 등 상당수 노인들은 과거의 화려함은 뒤로한채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또 전체 노인가구의 3분의1이상의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절대빈곤 상태에 있는 등 상당수는 초절정 ‘빈곤실버’로 지내며 외로움에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00년대 7%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뒤 앞으로 10년내 14%를 돌파해 ‘고령사회’에 도달, ‘빈곤실버’를 더 양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고령화 및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경제의 동력을 되살려 노인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프랑스와 스웨덴처럼 출산 및 양육을 국가 책임으로 인식, 공공보육 지원, 가족수당 지급 등 획기적인 정책을 동원해 복지국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급선무는 노인들에 대한 공경은 커녕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된 노인편견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노인에 대해선 그들의 열성적인 젊은 시절을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거리감을 두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부류라는 인식하에 무시성으로 일관했다. 노인복지가 젊은이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든지 국가재정이 복지에 과다 투입돼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한편으로 타당해 보이지만 엄밀히 이같은 주장은 애써 노인들이 일궈 논 열매를 혼자서 먹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시대 말 고종황제의 밀사 역할까지 한 미국인 헐버트는 “이 세상에서 관습적인 노인 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조선”이라고 했는가 하면 미국 공사를 역임한 샌즈의 회고록에도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이 말속에는 경제적인 원인보다는 노인들에 대한 공경의 정신에 있다. 이같이 외국인들에 비친 ‘노인천국’이 불과 100년만에 부끄러운 한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가 없다. 따라서 슈퍼실버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빈곤실버를 해소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노후를 준비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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