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급식당번…말이 봉사지"

대한민국 학부모로 산다는것

아침 7시,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이혜정(가명·41·서울 송파구)씨가 바쁜 손을 움직인다. 매일 아침마다 이 씨는 준희(가명·여·11)와 준영(가명·8)이의 알림장과 준비물을 꼼꼼히 살핀다. 밥 한술 뜰 시간조차 없다.

 

아침 8시 20분이 되자 이 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청소도구와 종이컵 등을 교실 사물함에 채워 넣기 위해서다.

 

지난 3월 개학과 함께 학부모 반 대표가 되면서 지난 학기 내내 그녀가 해오는 일이다.

 

교문 앞을 지나자 하늘색 셔츠에 감색 치마를 입은 '녹색어머니회' 소속 학부모들이 이 씨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 8시 10분이면 아이들 등교시간에 맞춰 무조건 해야 돼요." 이 씨가 곁눈질로 학부모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들은 '정지'라고 적힌 노란 깃발을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쉴 새 없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지난 3월까지 1년간은 이 씨도 녹색어머니회 회원이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다 건강마저 악화되면서 잠시 활동을 접었다.

 

학교에서 텅 빈 집에 '잠시' 돌아온 뒤에야 이 씨는 홀로 늦은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꼼꼼한 성격 탓인지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고혈압에 시달리게 됐다.

 

오전 11시 30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1학년 학생들에게 급식 배식을 하기 위해서다. 급식 배식이 끝나면 곧바로 교실을 청소한다.

 

"1학년 교실이라 책상 위가 더러워요. 먼지도 다 닦아줘야 해요."

 

청소를 모두 마치자 시계바늘은 어느덧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학기말이 가까워오는 요즘에는 그나마 여유로운 편이다.

 

지난 4월에는 학교에서 살다시피했다.

 

'교실 환경미화'를 위해 학부모들이 모여 교실 이곳저곳을 꾸미고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직접 만든 걸 좋아하고, 학교에 자주 와주길 바라니까요."

 

이 씨와 같은 학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바로 "엄마는 왜 안와?"라고 한다.

 

이 씨는 건강이 호전되는 대로 다시 녹색어머니회 회원으로서 등하굣길을 지켜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학교도서관 사서도우미로 활동해야 한다.

 

"1학년에 입학할 때부터 각오를 하고 가요.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엄마들의 참여가 저조해서 한 사람이 2~3가지씩 겸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처럼 1년 365일을 학교에서 보내면서도 불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교사들이 잡무에 매몰되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애들 가르치는 것 말고도 기안및 서류작성, 회의 등 선생님들의 잡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힘들면 아이들에게 짜증낼 수도 있고 해서 엄마들이 가서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집에 돌아온 이 씨는 아이들의 숙제와 밀린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를 마친 김 씨가 잠이 들기 전 시계를 봤다. 새벽 1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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