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새기는 우리의 사명

지난 5월 4일, 춘천시 북산면 추전리 602고지에서 60년 전에 멈춰버린 낡은 시계 하나가 발굴됐다. 시계의 주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어느 이름 모를 국군이었다. 육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유골로만 남아서 햇볕과 조우하며 세상에 나타나 그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차가운 땅 속에서 이 땅을 지키던 용사는 비단 이분 한 분만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땅 속 어딘가에 묻혀 ‘내가 아직도 나라를 위해, 그대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무언(無言)의 외침을 하는 장병들이 너무나 많다.

 

현충일은 바로 이런 분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자 제정된 날이다. 내 부모와 형제를 위하여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산화한 분들을 기리는 소중한 날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공휴일로 더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 하루쯤 쉬는 날로 여기는 듯하다. 이번 현충일은 일요일과 겹쳐서 쉬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할 뿐이다. 그러나 현충일은 그렇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의 형제들이 목숨을 잃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 것을 가슴 아파하며 살아남은 자로서 그분들께 감사하는 아니 감사해야만 하는 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그들의 잃어버린 ‘내일’이기 때문에 경거망동하면서 이 날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 벌어진 천안함 침몰 사태로 전사한 해군 장병들을 떠올리면 이번 현충일부터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 회복, 일자리 창출과 같은 눈 앞에 시급한 일에만 매달린 채, 많은 것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 교육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망언을 쏟아낼 때에만 비로소 강조될 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우리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어 민족의 인재들로 양성하려면 어릴 적부터 역사 교육을 시작해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또한 기념물 몇 개를 세워서 역사를 기억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관광지로 가꾸어진 역사적 기념물이 우리의 기억을 바로 잡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억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우리의 삶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던 용사들이 ‘충혼’으로 우리 곁에 남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다. 과거가 아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로 기억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지나간 것만이 아니라 지금 진행되는 것까지 모두 역사다. 우리의 이 역사 속에서 우리를 위해 먼저 희생된 분들을 잊지 말자. 우리 모두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그것만이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외부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길이며, 우리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보답이다.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 규명이 끝났다. 미국의 지지만이 아닌 과학적으로 사고 원인을 규명한 우리 정부의 결과물을 보고 여타 중립적인 국가마저 우리를 지지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더욱 명백해진다. 자주국방의 기초를 더욱 높이 쌓아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또한 국가적 위기 앞에서 더욱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성숙한 국민성도 함양해야 한다. 천안함 침몰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유가족을 위해 온 국민이 마음과 물질로 위로하던 미풍양속을 한단계 더 발전시켜 국난 앞에 단결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전 세계를 향해 한반도에는 자유와 평화를 열망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음을 보여주는 길이 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의 경제 성장이 세계인들의 눈에 경이롭게 보이듯이 우리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나라로부터 부러움을 사도록 만들자. 그것이 살아남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자들의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고붕주 부천 중원고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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