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교육청에 근무하시는 것 같은데, 학교를 없애든지 학원을 없애든지 해야지 서민들은 사교육비 때문에 살 수가 없어요.”
경기도교육청에서 방과후학교 담당장학사로 근무할 당시 출장을 가려고 정문 앞에서 택시를 탔을 때, 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학교와 학원 중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를 없애도 상관없다는 기사의 말에 30여년을 교육계에 몸담아 왔던 사람으로서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택시기사의 말처럼,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학교를 안 보낼 수도 없고, 학원을 안 보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사교육비 때문에 맞벌이를 해야 하고, 과로를 하면서도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 더 나아가 사교육비는 저출산과 가정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러한 사교육의 폐해를 막고, 공교육 내실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 및 학교 만족도 향상을 위해 전국 457개교, 경기도 90개 초·중·고를 ‘사교육 없는 학교’로 선정 발표했다.
우리 학교는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받아 운영한 지 1년이 됐고, 그 결과 사교육비 절감률 10%를 달성했다. 비록 목표 달성률은 미흡하지만 학교장으로서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느낀 사교육 없는 학교 성공 전략을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비전 제시로 공감대를 형성해 교직원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학부모에게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맞춤형 교육 활동을 통한 사교육 없는 행복한 학교’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교직원 연수와 학부모 설명회를 개최하여 교육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자신감을 갖고 서로 협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둘째, 사교육의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운영했다. 저학년은 표현 중심의 교과통합, 중학년은 협력담임제를 통한 교과교육, 고학년은 선택형 교실제와 프로젝트 학습을 통한 학력 향상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셋째, 정규 교육과정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하고 질 높은 방과후 교과, 특기적성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전교생이 각자의 종합재능기록표와 학교에 개설된 방과후 강좌를 기초로, 학습플래너인 담임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방과후 시간표를 작성하고, 이를 가정통신하여 이 시간표에 의해 방과후학교를 세트로 수강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학교에서 짠 방과후 시간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가정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수정 보완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60여 개의 다양하고 질 높은 방과후 교과, 특기적성 및 문화예술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넷째, 교과·특기적성 및 문화예술 강좌 수강 후에 귀가해도 나 홀로 아이가 되는 저소득층과 맞벌이 가정 자녀는 학교에서 저녁을 먹여 종일 돌봄 교실과 반딧불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엄마품 멘토링에 참여토록 했다. 부모의 늦은 퇴근으로 아이들이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밤 9시까지 학교에서 부모를 대신하여 학습과 보살핌 기능을 계속해 주는 것이다.
끝으로, 방과후에 늦게 귀가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학교를 위해 ‘방과후학교 안전 도우미’를 조직 운영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사교육 없는 학교 추진은 분명 어렵고 힘든 여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모든 열정을 쏟아볼 가치가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받은 학교가 먼저 실현 가능한 사교육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를 전국의 모든 학교에 일반화해 하루빨리 사교육 없는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염원해 본다. /정종민 수원 창용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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