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교장과 장롱 면허증

교과부는 교장 임용 방식의 다양화란 미명하에 자율학교에 내부형 교장공모(무자격교장), 개방형 교장 공모(특성화중·고, 전문계고, 예체능고), 일반학교에 승진형과 공모형으로 임용한다고 한다. 따라서 교장 자격 연수 비율을 현행 결원교장의 130% 범위 내에서 갑자기 150%로 확대하여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8월 말 현재 270명이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미발령 교장 자격 소지자 96명을 합하면 모두 366명이 임용을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의 경우는 교장 자격 소지자 450명이 임용 대기하고 있다. 9월1일 교장 임용에서 서울은 퇴직교장의 100%, 타 시·도는 50%를 공모로 선발할 예정이다. 차후 공모 교장 경쟁률을 10:1 정도까지 올린다고 한다. 공모의 1차 심사는 학교의 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2차 심사는 지역 교육청(초·중학교), 고등학교는 도교육청에 초빙 교장 공모심사 위원회를 구성 운영토록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내부형(무자격) 교장 공모제로 인한 인사 질서의 문란으로 대다수 교원의 사기가 저하된 상태다. 또한 이념적으로 좌편향된 일부 교사들로 포퓰리즘의 질곡에 빠져 교단이 황폐해 있음은 팩트(fact)다. 노무현 정부 교육 정책의 최대 실패 사례를 현 정부가 답습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 와중에 공교육 실패의 원인을 교장 공모라는 경쟁과 학부모의 선택권이라는 논리로 초점을 호도하면 안 된다. 계란이 속에서 깨지면 병아리가 되지만 밖에서 깨면 후라이가 되듯 교장 인사 질서가 외부 충격으로 부작용과 역기능이 심히 염려된다.

 

교육계가 학연, 지연, 동서남북 이념 등의 색목으로 갈라져 선후배도 없이 이전 투구하는 모습에 공교육의 앞날은 더욱 암울할 뿐이다.

 

국가와 정부의 버팀목인 교장들을 비리의 온상과 퇴출의 대상으로 내몰다 보니 현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비등점을 넘어섰다. 지금 교과부가 교장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협조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낭만이다.

 

교장들의 심정은 누군가 건드리면 누선(淚腺)이 터질 것 같은, 그러면서도 마음속은 정화되어 교육의 앞날을 염려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단위 학교마다 공모에 의한 교장 임용은 좌파 투쟁가의 전술로는 어울릴지 몰라도 동양적 선비의 모습은 아니다. 공모를 주도하는 관료의 시각은 미국의 일부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접목시키고자 하는데 그 제도는 참고서는 될지언정 교과서가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이런 일련의 정책은 교장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며 정책 추진 과정에서 편견의 질량이 감소하기보다는 더 공고해지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사 예측성이 무시되어 기존의 승진 교장 제도를 믿고 준비해온 교원에 대한 신의 원칙과 기대 이익에도 반하는 처사다. ‘공교육 정상화=공모교장’이라는 정책 의제부터 잘못되었다. 굳이 교장의 경쟁력을 유도하기 위함이라면 시장 메커니즘을 교육 현장에 벤치마킹하여 연봉제나 계약제를 도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현장 적합성이 있다. 통계학적으로 어느 조직이든 3%는 퇴출 요인이 있다고 한다. 그 후 퇴출의 통로를 열어 한평생 교직에 몸 담은 분들에게 명예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어느 원로 교감 선생님의 독백 왈 “나는 말주변도 없고 외부로 드러난 화려한 경력도 없어서 공모에 자신이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노동운동이나 열심히 할 걸” 후회 아닌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장탄식 후 자조(自嘲) 섞인 말로 “어차피 내가 취득한 교장 자격증은 장롱 면허증이야” 한다. 교육계의 버팀목인 중견 교원들의 인내가 임계점(臨界點)에 이른 것이 현장 분위기이다. 

 

/김기연 경기도초등교장協 홍보위원장ㆍ 여주점동초등학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