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시대의 흐름

대중매체속 사회·가치관 녹아 있어

천천히 숨고르는 시간 가져야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조나 시대상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문화를 들여다 보라. 문화는 그 시대의 양식, 트렌드, 사회상, 가치관이 그대로 녹아있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TV와 신문매체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문화를 반영하고 때론 유행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대중매체를 관심있게 보면 그 시대의 흐름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원하는 기호를 읽을 수 있다.

 

최근 다양한 문화 아이콘 중에서 하나의 큰 축은 자연 혹은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회귀적 갈망이다. 그 바람은 서점가에서도 불고 있다. 얼마전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직후 스님의 책들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17권이 올라갔고 ‘무소유’를 비롯한 몇 권의 책들은 금세 절판됐다. 평소 스님이 강조하신 ‘무소유’와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삶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점가에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있다면 방송에서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올 초 방송에서 보여준 ‘아마존의 눈물’은 TV 다큐 사상 최고의 시청률인 20%를 돌파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아마존에 살고 있는 조에족들의 원시적이며 역동적인 삶을 보면서 수천년전 우리의 조상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 기억들이 수세기에 걸치면서 후손들의 무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던 원시성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었다. 중국 서남부 운남, 사천에서 시작되어 티벳과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5천여㎞ 전 구간을 방송한 ‘차마고도’ 역시 아름다운 풍경과 소수민족들의 삶과 문화를 볼 수 있었던 귀한 다큐멘터리였다.

 

방송프로그램은 제작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현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의미와 이미지를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미학과 이미지 과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프로그램보다 꾸며지지 않는 모습, 사람들의 날숨과 들숨이 그대로 노출되는 ‘날 것’을 보고싶어 한다. 질펀하고도 진솔한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과 그들의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으면서 그들의 삶과 대비되는 내 삶을 반추하고 싶어한다.

 

문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역시 자연 혹은 오리지널을 선호하는 추세다. 과잉의 재료와 양념, 복잡한 조리법과 화려한 데코레이션으로 완성된 국적불명의 퓨전음식에 싫증난 대중들은 이제 단순하고 자연적인 음식에 향수를 느낀다. 전국 곳곳의 오지나 시골집에 찾아가 할머니들이 손수 그 지방에서 채취한 식재료를 이용한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먹을거리를 만들어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는 것도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대중들의 기호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러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 식당은 친환경적인 음식점으로 영국 요리 월간지 레스토랑 매거진이 최근 발표한 세계 최고 식당 50위 중 1위에 올랐다. 이 식당은 코펜하겐 주변에서 나는 제철 재료만 사용하며 덴마크에서 생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올리브오일도 쓰지 않고 소금도 거의 뿌리지 않는다. 땅의 기운을 그대로 식탁으로 가져가려는 셰프의 확고한 철학이 있다. 이 식당 만찬이 1인분에 20만원 정도의 높은 가격이지만 예약 개시 직후 금세 마감될 정도로 손님들의 반응은 뜨겁다. 또한 방송에서 제주도의 올래길 탐방이 소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올래길 걷기 체험으로 이어졌고 다른 지방에서도 제 2, 제 3의 올래길을 발굴하고 있다.

 

‘느리게, 그리고 자연으로!’ 더 문명화된 세상을 만들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지금까지 앞만 보고 뛴 결과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우리 모두는 정신적 허기와 영혼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속엔 그런 대중들의 욕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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