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으로 빚는 예술가의 어머니

매년 5월 이맘때면 정부는 예술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예술가들의 어머니들에 대해 ‘장한 어머니상’을 시상한다. 올해도 지난 3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을 가졌는데 역대 수상자들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가 직접 경험한 특별한(?) 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씨의 어머니이신 고(故) 이현경 여사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 분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 같다.

 

김씨는 현재 한국에 귀국해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필자는 당시 신문사 문화사업부에서 공연기획을 담당하던 때였는데, 섭외를 통해 세계적인 연주가의 국내연주회 일정이 확정되면 신문이나 각 방송을 통해 사고(社告)를 내보내게 된다. 그러면 김씨의 모친으로부터 어김없이 연락이 온다. 서울 운니동 자택에서 세계적인 연주가를 초청해 식사대접을 하고 싶으니 일정에 꼭 넣어 달라는 것이다. 운니동 자택은 전통적인 한옥으로 조선시대 말 흥선대원군이 쓰던 운현궁의 별채였다.

 

그 당시 운니동 자택으로 초대받은 음악가는 세계적인 지휘자 레오나드 번스타인, 유진 오먼디, 리카르도 무티,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 핑커스 주커만, 이자크 펄만, 첼리스트 요요마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했다.

 

한국의 전통가옥에서 신선로, 구절편, 각종 떡과 전, 감주, 수정과 등 당시 일반인들이 먹어보기 힘든 정통궁중 음식들을 손수 만들어 접대함으로써 세계적인 예술가들에게 한국은 물론 아들인 김영욱에 대한 이미지를 굳건히 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예술가 김영욱이 있기까지는 자신의 재능과 더불어 지극정성으로 손님을 모시는 그의 모친 은덕이 깊게 서려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내일 모레면 어버이 날이다. 원래는 어머니날이라고 해서 100년 전부터 미국에서 시행해오고 있는 기념일인데, 우리나라도 1956년에 도입돼 1972년까지 어머니날로, 그 이후 어버이날로 불려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으며, 어머니 또한 자식에 대해 글이나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무한대의 사랑을 베푼다.

 

조선 중종 때 대학자인 이율곡을 교육하기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모정의 표상이다. 율곡이 저술한 신사임당의 행장기에 의하면 신사임당은 올바른 예도와 자애, 온화한 성품과 행실로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임당은 또 슬하의 7남매에 대해 어릴 적부터 좋은 습관을 갖도록 엄격한 교육을 시켰으며, 아들딸을 구별 않고 개성을 살려주면서 진정한 사랑으로 키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강원도에서는 지난 75년부터 신사임당상을 제정하여 강원도 출신이나 강원도에 거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해마다 시상하고 있는 등 신사임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모양처의 표상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아마 뒤늦게나마 불효를 깨달았거나, 효도하고 싶어도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어버이날을 맞아 동그랗게 굽어진 어머니의 작은 등이 아련하게 생각난다. 자손들이여! 어버이 돌아가신 후에 호화분묘의 거창한 장례 치르며 자기과시에 열중하지 말고, 살아 계실 때 어버이께 정신적, 육체적 효를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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