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재현할 수 없었던 고려의 ‘비색(翡色)’이 정확히 어떤 색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비색’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있었지만, ‘비색’은 어느 틈에 안개같이 빠져나와 신비의 저쪽으로 넘어가 버린다. ‘수중금(袖中錦)’에서도, 고려청자의 유태(釉胎) 색이 매우 개성적이며 아름다웠기 때문에 중국천하의 수많은 청자들을 제쳐 놓고 ‘천하제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때(12세기 중반)의 ‘비색’은 과연 어떤 색이었을까.
비색의 ‘비(翡)’는 물총새 수컷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인들은 월주(越州)청자의 비색(秘色)을 취색(翠色)이라고 해 역시 물총새 암컷 깃털 색을 연상케 하는 표현을 썼다. 당시 고려에서 중국의 색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 ‘취(翠)’ 대신 ‘비(翡)’자를 썼을 가능성도 있다. 암컷의 색이 수컷에 비해 녹색이 더 많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중국 청자는 원래 옥(玉)을 모델로 하면서 여러 조형요소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옥’과 관련한 견해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나라 후기(8세기) 때 책인 유명한 ‘다경(茶經)’에도, ‘청자는 옥을 닮고, 백자는 은을 닮으며(靑瓷類玉 白瓷類銀)’라 하여 청자와 ‘옥’이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의 기록에는 ‘청기와(靑瓦)’나 ‘녹자(綠瓷) 연적이나 베개’ 등을 청색과 녹색으로 표현하면서 한결같이 ‘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매우 놀라운 사실은 고려인의 기록에서 ‘비색(翡色)’이라는 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자랑스럽게 여기는 고려 ‘비색’ 청자라는 말이 당시 고려인에게 보편화돼 있던 말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해 진다.
‘비색’이란 말은 중국 사신 서긍(徐兢)의 고려견문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4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말이다. 이 기록을 근거로 실체가 분명치 않은 ‘비색’이라는 표현을 최고 수준의 청자를 가리킬 때 관행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 건 경기도자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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