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반드시 원안대로 추진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그것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때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한 말이다. 하지만 공수표였다. ‘sorry’라는 한 마디에,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사업, 국가수장의 수십 번의 약속, 헌법재판소까지 다녀온 산고 끝에 도출된 여야의 합의, 국민적 합의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세종시는 수정하겠단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총리까지 세종시를 들락거린다. 그렇게 자주들 가시는 걸로 보아 부처 몇 개 옮겨도 국정운영엔 별 탈 없을 듯한데, 지금 가는 건 괜찮지만 혹시 전쟁이 나는 국가위기 사태가 올지 모르니 세종시 원안 추진은 불가능하다고 강변한다.
선물 보따리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정부는 주민들이 부자가 되고, 인구는 점점 늘어나며 엄청난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교육에 과학과 경제를 넣어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가 됐고, 과학비즈니스벨트, 경제자유구역 지정, MRO(정비·점검) 및 항공정비복합산업단지 조성 지원에 중소기업 전용 녹색단지가 들어선단다. 아마 한반도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은 조선업 빼곤 다 우겨 넣어야 하는 분위기다. 예정에 없던 대덕보가 4대강 사업에 추가됐다니, 충청도 내륙에 조선소도 들어설지 모르겠다.
잘 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지난 18일 진행된 한나라당 의총에서 한 의원은 ‘어차피 대선 때 다시 불거질 문제’라며 해결은 대선 이후에 날 것임을 암시했다. 세종시 수정안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공약은 안 지키면 그만이지만 행정복합도시 세종시(원안)는 이미 진행 중이다. 그래서 정부가 수정안을 고집하면 할수록 피해는 커진다.
정부는 대기업들이 입주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정부 수정안에 덜컥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다. 첨단사업은 투자시기가 중요한데, 자칫 잘못하면 2012년 이후까지 구경만 하다가 사업을 망칠 수도 있다.
기업은 안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지방도시들은 처참한 지경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함께 국가식품클러스트 구축사업을 추진하던 익산은 정부의 롯데 입주 발표로 사업 무산의 위기가 닥쳐왔고, 광산업 육성을 준비 중인 전남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원주 첨단의료복합단지도 무산위기에 놓여 있고, 원주-강릉철도는 단선추진으로 축소됐으며, 동해안 경제자유구역 역시 앞날이 불투명하다. 인천의 중견중소기업들도 비용축소와 자산확대(땅값)의 목적으로 세종시 이전을 고민한다고 한다. 지방도시는 비상 시국이다.
경기도, 수원엔 피해가 없을까? 물론 정부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종시 투자기업에는 삼성 LED가 포함되어 있다. 삼성 LED. 삼성전기와 전관이 합작해서 작년 4월에 만든 회사다. 수원 매탄동에 본사와 R&D 그리고 제조업무를 함께 하며 용인 기흥에선 반도체 라인을 빌려 생산하고 있다. 언론과 관련업계에 의하면 전년도 매출이 8천억원으로 추산되어 1여년 만에 약 5배 정도 늘었고, 고용도 지난 4월 1천명에서 12월 1천600여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미래형 알짜사업이다. 또한 20여개의 관련 중견기업과 1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들이 존재하여 이미 수원-용인 지역은 LED단지 형성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하지만 LED 신규 사업 분야를 세종시에 짓는다면 본사는 수원, 공장은 세종시가 된다. 기업이 둘로 쪼개지고, 기술력을 가진 협력업체들도 둘로 나뉘어야 한다. 즉, 수원은 LED 산업의 세계적 메카가 될 기회를 잃는 것이다.
스스로 공약한 747 공약도 지키지 못하면서 모두가 합의했던 세종시를 수정하느라고 온 나라, 그리고 여당 스스로도 분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밴쿠버의 금메달 소식에 “나라 안이 시끄러워도…국민은 위대하다”고 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국민은 위대한데 시끄럽게 하는 그 누군가가 바로 문제다. 정권 초부터 강부자 내각, 쇠고기 정국, 4대강 사업 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원칙과 철학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시는 원안 추진이, 신규 LED 공장은 수원이, 모두가 행복한 것이 순리이고 원칙이다. /이찬열 국회의원(민·수원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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