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어느 지인은 홀로 아들과 딸을 먹여 살리는 여성가장이다. 이른바 母子(모자)가정이다. 중학교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학비를 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녀는 포장마차 일부터 보험모집인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생존하기 위한 삶의 최전선에 나서서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이다. 그녀는 구정 설날이 지나고 나면 보증금 수백만원에 월세 20만~30만원짜리 단칸 월세 방을 구하고자 복덕방을 찾아다녀야 하는 처지이다.
요즘 그녀는 현실의 높은 벽을 마주하면서 겪는 심각한 좌절을 이처럼 토로하고 있다. “제가 게으르다고요? 천만에요! 저는 정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을 정도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생활은 나아지기는 커녕 악화만 되고 있어요”라고 하소연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남편들의 실직과 사업실패로 인한 가정경제의 파탄이 결국 이혼으로 귀결되고 이에 따라 모자가정이 수도 없이 늘어만 가고 있는 게 우리 삶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효율성 위주의 경제노선은 고용의 유연성만을 중시한 나머지 우리 인생에서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부터의 명예퇴직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놓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같은 회사 안에 한 지붕 두 가족이 사는 형태로 차별을 공인하는 기형적인 업무시스템을 창조했다. 글로벌시대의 무한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일환으로 국내 제품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라는 생산모델을 고안해냈다. 이로 인해 건실하게 공장을 운영하던 국내의 수많은 하청업체 사장들은 공장 문을 닫고 음식점 경영에 나서거나 아니면 부동산 투자에 몸을 담갔다가 뜨거운 맛을 본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취직하였다가 명퇴 당한 사람, 건실하게 공장을 운영하다가 거래처가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바람에 사업기반이 와해되어서 방황하는 사람, 노후생활을 안락하게 보내겠다는 욕심에 자기가 가진 쌈짓돈에다가 은행대출을 받아 백화점 매장을 열었다 손해 본 사람 등 무심결에 아니면 주변 권유를 받아 얼떨결에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큰 낭패를 보고 빈곤의 늪 속에 빠진 과거의 중산층들이 우리 사회 도처에 넘쳐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내 지인의 절박한 사정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몰락한 중산층 가정들이 현재 겪고 있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모습을 두고 ‘나는 그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밤낮 없이 열심히 일했더니 성공했다. 너희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한 거야’라고 가난을 게으름 때문으로 치부하는 어느 성공신화의 주인공. 우리경제는 누가 뭐라 해도 수출 등 대외무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펴야 하며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은 과감하게 도태시켜 기업의 체질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에 밝은 냉혹한 관변 경제학자.
그러나 세상만사가 노력만 해가지고 다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급속히 발달하는 정보화 사회라는 시대적 흐름 때문에, 전 세계에 걸쳐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자본과 노동의 획득이라는 글로벌시장경제체제 때문에, 고령화시대를 맞아 쏟아져 나오는 장년 노동력의 과잉현상 때문에 우리 경제 사회 시스템은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과거 산업화시대의 대명제가 뿌리부터 송두리채 뒤흔들리면서 그 태생적 한계를 맞고 있다.
/장준영 민생경제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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