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발굴 조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 실측이다. 실측은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정보를 도면으로 옮겨, 보는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말한다. 고고학에 입문할 때 가장 먼저 하는 훈련도 실측이며, 도면만 보아도 조사기관의 발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실측은 중요하다. 때문에 모 대학에서는 고고학 교수를 선발할 때 유물실측 시험을 보기도 했다.
실측은 3차원의 데이터를 2차원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는 유구의 형태나 유물의 단면 모습 등을 보여주기 위하여 고고학 보고서에는 반드시 실측도면이 첨부되기 마련이다. 보고 그리는 것이니까 실측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적이나 유물이 가지고 있는 공간 좌표를 파악하여 축소된 형태로 도면에 정확하게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발굴을 하다 보면 주거지 패총, 고분, 건물지 등 여러 종류의 유적이 노출되는데 그 중 실측하기 가장 어려운 유적이 산성이다. 대부분의 산성은 높은 산의 가파른 경사면에 있어 실측을 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벽 중에는 높이가 20m에 달하는 것도 있어 어떻게 해야 정확한 실측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 산성을 발굴하는 현장에서 풀어야 할 큰 숙제였다.
지난 2000년 12월, 자동차 회사에서 엔진 개발을 담당했던 몇 명의 전문가들이 박물관으로 찾아와 “엔진 도면을 제작하는 데 쓰이는 레이저 스캔 기술을 고고학 조사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하며 자문을 부탁했다. 레이저 스캔 기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그동안 고민해 오던 정확한 실측의 숙제를 풀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됐다.
곧바로 발굴을 진행하고 있었던 남한산성과 연천의 고구려성인 호로고루 성벽에 대한 실측을 의뢰했다. 3D-Scan의 결과는 정확도에 있어서 그동안 해 왔던 실측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높이 5m에 길이 수십m의 성벽을 실측해도 오차범위가 10㎜ 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단면과 함께 유적에 대한 3차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3D-Scan으로 한 번 도면을 작성해 놓으면, 이후 모형 제작이나 정비, 복원 시에도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한산성과 호로고루에서 처음으로 고고학 실측에 적용한 이후 고고학 조사의 중요한 과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3D-Scan 기술. 지난 10여년 동안 이렇게 자리를 잡기까지 고고학 실측을 기계로 하는 것에 대한 많은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조사기관들이 1m 간격으로 줄을 치고, 언 손을 녹여가면서 줄자를 대고 실측하지 않아도 정확한 도면을 확보할 수 있는 3D-Scan 기술을 현장에서 이용하고 있다.
고고학 조사에 있어서 3D-Scan 기술의 사용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경향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단순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이 경향은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실측 가능 여부가 고고학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새로운 수준으로 발돋움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며칠 뒤 남한산성 8차 발굴 보고서가 간행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유구뿐만 아니라 유물에 대한 실측과 탁본까지도 3D-Scan 기술로 작업한 첫 번째 보고서가 될 것이다. 이 보고서가 고고학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징후의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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