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행정구역개편 입장을 밝히고 행안부가 통합지역에 자금 등 인센티브를 주기로 하자 전국의 시군구에서 통합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부는 현재의 행정구역이 규모의 불경제로 비효율적이고, 광역행정의 효율적 수행이 어려우며 생활권과 행정권의 불일치한 점을 시군구 통합의 주요한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가 과연 적절한지, 문제가 있다면 어디서 기인한 것이고 시군구를 통합하는 것이 그 해결방안이 될 수 있는지, 자치와 분권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적 흐름에 과연 부합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짚어 보아야 한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기능은 사무가 75대 25, 조세(예산)는 80대 20으로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비효율성과 규모의 불경제는 당연한 결과이다. 대부분 중앙정부의 위임사무일 뿐 자체 고유사무는 거의 없어 권한도 없고, 여기에 재원도 없어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은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하고 행정의 효율적 수행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는 전면적인 지방자치가 실시된 1995년 이래 지방자치의 핵심요소인 자치권, 자치사무, 자치재원을 지방자치단체에 제대로 이양하지 않은 중앙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
인구 70만~100만을 평균으로 60~70개의 통합시 탄생을 전제로 2~5개의 인접한 시군구를 통합시키는 중앙정치세력의 구역개편안은 행정 비용 절감만을 기준삼아 통합하는 것이어서 분권과 참여의 지방자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먼저 무분별한 시군구 기초 자치 통합은 생활자치,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시군구 기초 자치는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생활자치가 가능하도록 근린성과 민주성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하는 주민자치의 실현공간이다. 이런 특징을 무시한 무분별한 통합은 사실상 기초 자치를 폐지하여 지역정체성을 훼손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아울러 현재의 16개의 시도가 가지는 정치적, 재정적, 행정적 역량을 60~70개의 통합시로 분산시킴으로써 지방의 자치역량을 축소시켜 필연코 중앙정부의 통합시에 대한 직접적 개입이 증대될 것이다. 이는 지역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중앙집권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시대역행적 발상이다. 특히 자치행정서비스의 미래적 흐름과도 맞지 않다.
우리나라는 2026년에 ‘65세 이상 인구비’가 20.8%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치행정은 근린성을 유지하며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로 전면 전환되어야 하고 그 집행방식도 주민들의 유기적 참여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초자치 구역 광역화는 이러한 미래적 요구에 반응하기 어려워 주민들의 불편만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결국 중앙정치세력의 시군구 통합론은 자치와 분권의 관점이 아닌 중앙 통제적 관점에서 출발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시군구 자치단체장들이 냉정한 판단 없이 경쟁적으로 통합논의에 나서는 것은 중앙통제를 바라는 중앙정치세력에 부화뇌동 하는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은 단순히 효율성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를 위한 민주성도 중시되는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중앙정부 등 정치세력은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중단하고, 오히려 전면적인 지방정부로의 권한이양에 나서야 한다. 권한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시도 광역자치단체는 산업, 교육, 치안, 지방조세 등의 권한을 주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국가의 산업경쟁단위가 되도록 하고,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는 풀뿌리 생활정치공동체 단위로서 지역의 일을 주민 스스로 처리한다는 민주정치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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