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前 대통령’ 서거 정치적 악용 말아야

지난 5월23일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고 놀란 가슴이 2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치른 사회장, 국민장, 국장 중 최대 규모의 추모 행렬에 놀랐고, 그의 죽음을 놓고 비겁하고 무책임하다는 것에서부터 한국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한 의로운 열사의 죽음이라는 등 그토록 다양한 해석이 있음에 놀랐다. 그 와중에서 핵실험을 강행하고 연거푸 미사일을 쏘아대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행보에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지 아니면 일상화 돼서인지 평온한 모습을 보이는 우리 국민들에게 놀랐다. 이렇게 급박하게 전개된 일련의 사회 상황들을 차분하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우리 학자들의 몫이지만 우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연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또는 남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의 극단적 인간행동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속성 탓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사회적 책임으로 해석한다. 자살의 원인이 사회에 있음을 증명하려 한 뒤르켐의 주장은 여러 가지 논리적 취약성이 있다. 그러나 뒤르켐 이전에는 잘하거나 못하거나 인간 행위가 모두 개인의 속성으로 치부한 것과는 달리, 그가 일깨워 준 것은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 행위의 원인들이 사회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 점이며 이는 커다란 학문적 기여라고 생각한다.

정치가의 죽음이 그것도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된 사람의 죽음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정치의 중심에 선 정치가들의 극적인 죽음은 대부분 타인에 의한 즉 암살의 형태로 귀결되었으며, 먼 옛날의 사례들을 들추지 않더라도 인도의 간디, 미국의 케네디, 필리핀의 아키노 등의 죽음이 그러했다. 이들의 죽음은 각 사회에서 정치적 전환의 커다란 계기를 만들었다. 이들 죽음의 공통적 결과는 이러 저리 쪼개진 분쟁과 갈등을 거듭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대통합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들 모두 생존당시 행했던 모든 잘못을 사회가 덮어주고 그들이 한 좋은 점을 부각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만일 그들이 그런 비극적 죽음을 맞지 않았더라면 험난한 정치적 삶을 살았을 것이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많은 비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그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들추어내서 고쳐보려 애썼다는 반증이다. 말만 무성했던 약자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들을 모색해 보았고, 권력과 돈의 교환을 차단해 보려 했고, 한국사회의 독특한 연고주의의 틀을 깨보려 하는 등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많이 아파보았고 또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그는 문제를 제대로 보았지만 너무 성급했고 가볍게 일을 처리하려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민주당의 경우 지지율이 올랐다고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따질 일은 아니다. 이는 그의 비극적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불과하며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제 그만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패거리 싸움을 끝내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진짜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잘못을 덮어주고 그가 우리 사회를 바꾸려고 한 정책들을 차분히 평가해보고 옳은 것이라면 지속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정치권이 그의 죽음을 분열된 한국사회를 통합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런 정치적 이용은 환영할 일이며 한국사회의 미래는 매우 밝다.  /공유식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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