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가 앞장서 응답하자

이진배 의정부 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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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80을 넘긴 내가 새삼 이런 물음을 던져본다.”

2월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해 7월 병원 입원을 위해 떠나던 순간까지 사용했던 주교관 서재 책상위에 남겨진 육필 원고의 한 구절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자기성찰의 이 한마디 “나는 누구인가”를 새겨본다.

도덕성의 경지가 높을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상이다. 추기경을 떠나보낸 빈자리가 이와 같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추기경의 진실을 분명하게 깨닫기 때문이다. 추기경이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던진 자기성찰의 질문이 추기경의 진실을 확인시켜 준다. 추기경의 진실은 끊임 없는 자기성찰의 도덕성이 아닌가 한다. 길거리 추위를 무릅쓰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섰던 추모의 행렬에서 불어와 사람들의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준 훈훈한 바람은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굽이굽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은 고요한 가운데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해 보였다. 그 행렬은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들이 신앙과 관계없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행렬은 영혼이 빚어낸 한 폭의 예술이 되어 사람들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불교계의 큰 어른 법정 스님은 추기경을 추모하는 글(조선일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분이 그토록 사랑한 이 나라, 이 아름다운 터전에 아직도 개인 간, 종파 간, 정당 간에 미움과 싸움이 그치지 않고 폭력과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다. 이러한 성인이 이 땅에 계시다가 떠났는데도 아직 하느님의 나라는 먼 것인가. (중략) 그 분은 지금 이 순간도 봄이 오는 이 대지의 숨결을 빌어 우리에게 귓속말로 말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법정스님은 위의 글에서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의 추구는 영적인 온전함에 있다. 우리가 늘 기도하고 참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깨어지고 부서진 영혼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나눈 법정 스님의 말씀을 통해 추기경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함축된 절절한 자기 성찰을 반추하게 된다.

추기경과 법정 스님, 두 분 종교 지도자의 이 나라, 이 사회, 그리고 우리 이웃을 향한 큰 사랑의 가르침에 이제 우리가 응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추기경의 선종을 대오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미움과 싸움, 폭력과 갈등의 벽을 허물고, 깨어지고 부서진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경제 한파가 엄습한 이 난국을 극복하는 길도, 이 사회의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가는 것도 개개인의 자기성찰이 모여 쌓아 올리는 사랑과 화합의 공동선의 도덕적 가치를 우리 사회의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개개인의 자기성찰을 종교의 영역에만 미루지 말고, 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생활 속으로 확산 시켜 나가자. 이를 위해 해야 할 각자의 몫이 있지만, 그 중에서 문화예술계가 해야 할 역할은 가장 크고 중요하다. 문화예술계가 앞장서서 이 사회의 도덕성 재건을 위한 “나는 누구인가?” 자기성찰 운동을 이끌어 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떠나신 추기경 침대 위에 홀로 남겨진 귀여운 곰 인형을 영영 외롭게 만들지 않도록, 욕심을 절제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이 사회의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게 하자. 물질만능의 이기주의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풍요로운 정신이 선사하는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자. 지나친 경쟁과 갈등이 조장하는 투쟁과 패싸움을 이 사회에서 종식시키고, 공정한 게임과 대화의 미덕을 바로 세워 나가자. 이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을 청소하여, 약속을 지키고 정직한 사람이 대접 받도록 하자. 이 모든 자기 성찰에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진배 의정부 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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